[동아광장/박경미]사교육만 키운 3不정책

  • 입력 2006년 2월 1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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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려는 인간의 소망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올라간 중세의 고딕 건축물을 낳았다. 이 건축 양식에 따라 성당을 높이 세우다 보니, 성당은 다른 건물에 비해 번개를 맞는 일이 빈번했다. 당시 사람들은 번개에는 ‘신의 분노’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신을 섬기는 인간의 정성이 부족해서 성당이 번개를 맞은 것이라고 생각해 성당을 더 높게 세웠고, 그 결과 아이로니컬하게도 성당이 번개를 맞을 가능성은 더 높아지게 됐다. 번개를 피하려는 노력이 번개에 맞을 확률을 더 높이는 악순환을 불러온 것이다.

1752년 미국의 발명가이자 정치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번개가 전기의 일종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연에 전선을 연결해 번개를 유도하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이 실험 결과에 착안해 피뢰침을 발명했다. 건물의 가장 높은 곳에 전기가 잘 흐르는 침을 박고 이를 전선으로 땅과 연결하면, 번개가 칠 때 피뢰침을 통해 전기가 땅속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건물에는 피해를 주지 않게 된다.

피뢰침의 발명에 대한 역사의 한 토막을 소개한 이유는 대학 입시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이 이와 비슷해 보여서다.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학생들 간의 치열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교육 당국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변별력을 약화했고, 고등학교 간의 격차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내신도 충분한 변별력을 갖지 못하게 됐다. 3불(不) 정책으로 본고사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우수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이 선택한 카드는 논술이다. 올해 유수 대학은 논술시험에서라도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논술 문제의 난도를 한껏 높였고, 그 여파로 많은 학생이 서둘러 논술학원을 찾고 있다. 공(公)교육을 살리려는 정책이 거꾸로 사(私)교육의 번창을 불러온 셈이다. 번개를 피하기 위해 성당을 높이 세우고, 높게 세워진 성당에 번개가 떨어질 확률이 높아진 것과 유사하다.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입시 경쟁은 있었지만 요즘 학생들은 예전보다 더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 수능을 준비해야 하고, 내신에도 신경 써야 한다. 체육 실기시험 때가 되면 영어, 수학 과외가 끝난 밤늦은 시간에 줄넘기와 농구 과외를 받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미술 실기의 경우 수업시간에 완성해 제출하도록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한 주에 끝나지 않기 때문에, 일부 극성 학생은 학교에서 작품을 시작하면 미술 과외 선생님과도 작품을 병행한다. 그러고는 집에서 가져간 작품과 수업시간의 작품을 바꿔치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내신 관리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갖가지 행태를 보면 참으로 씁쓸해진다.

이제 그에 더해 논술이 사교육 시장의 태풍으로 등장했다. 논술시험에서는 정형화된 논리와 글 쓰는 잔재주 몇 가지를 터득하는 족집게식 과외가 통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진득하게 책을 읽어 사고의 깊이를 키워야 한다고는 하지만 논술 과외는 한동안 성행할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인데, 논술이 강화된다고 하니 글씨 학원에 보내야 할까 싶다. 일찍부터 컴퓨터 채팅을 시작하고 일기마저도 학급 홈페이지에 올리는 요즘 아이들의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우리 아이의 글씨는 상형문자에 가깝다. 짧은 시간에 논술 채점을 할 때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글씨와 같은 외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으니 논술에 대비해 글씨 연습부터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입시제도를 바꿀 때 단골로 등장하는 정당화 논리는 사교육의 감소이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 볼 때 제도가 어떻게 바뀌어도 사교육은 창궐해 왔다. 수만 명의 수강생을 확보하고 있는 유명 인터넷 강사, 코스닥 등록 기업이 된 입시학원, 신문 전단지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논술학원 광고 등 사교육 시장에는 불황이 없다. 입시 과열에 대한 대증요법으로 제도를 자주 바꿀수록 학교보다 발 빠르게 움직이는 사교육에의 의존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피뢰침의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과열 경쟁을 잠재우는 ‘원천 기술’은 존재하지 않지만, 입시에 대한 여러 규제와 가이드라인을 풀고 학생 선발의 전권을 대학에 돌려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전기가 통하는 피뢰침을 높이 세우는 것이 위험한 발상으로 보이지만 번개를 땅으로 안전하게 내려 보내는 것처럼 대학이 자율적으로 입시를 관장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여러 문제를 순리대로 푸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박경미 객원논설위원 홍익대 교수·수학교육 kpark@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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