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신정일씨 ‘다시 쓰는 택리지’ 완간

  • 입력 2006년 2월 1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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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전국을 떠돌면서 350여 개의 산을 오르내렸고 7개의 강을 발원지부터 바다 어귀까지 따라 걸었다. 신발 밑창 닳는 건 일도 아니다. 어깨에 멘 카메라 끈이 세 번이나 닳아 떨어졌다. 우직하게 이어지는 도보의 진동에 그 질긴 카메라 끈마저 해져 버리고 만 것이다.

최근 ‘다시 쓰는 택리지’의 마지막 권 ‘우리에게 산하는 무엇인가’를 내며 이 시리즈 5권을 완간한 문화답사가 신정일(52·황토현문화연구소 소장·사진) 씨. 그토록 ‘징하게’ 걸었건만 여전히 그에게 걷는 일은 쉽지 않다고 한다.

“5, 6일 이상 걷다 보면 잘 때도 계속 걷는 꿈을 꿔요. 3년 전, 조선시대 한양과 영남을 잇던 영남대로 400km를 14일 내리 걸었던 적도 있지요. 일행이 있을 땐 오전엔 대화를 하다가도 오후 2, 3시가 되면 말없이 걷지요. 걷다 보면 물리적 길뿐 아니라 마음속 길도 걷게 됩니다.”

‘다시 쓰는 택리지’는 그렇게 그가 ‘좀처럼 숙달되지 않으며 계속 새로운 노동’인 걷기를 통해 국토에 바치는 애정 어린 헌사다.

답사를 다닐 때마다 조선시대 이중환이 쓴 ‘택리지’를 들고 다닌 그는 팔도의 역사와 지리 풍속을 제대로 쓴 유일한 책인 ‘택리지’가 계속 보완 발전되지 못하는 것이 늘 아쉬웠다.

“‘택리지’를 주제로 한 석박사 논문 50편가량을 찾아 읽었는데 역사학자는 ‘택리지’가 담고 있는 지리에, 지리학자는 역사에 무관심했어요. ‘택리지’에 들어 있는 ‘문사철(文史哲)’을 모두 아우르는 후속 작업이 없는 게 안타까워서 직접 써 보자 작정했지요.”

이번에 출간된 5권에서는 산 350여 곳을 다니며 기록한 옛사람의 산에 대한 사유, 산의 문화유산과 고개, 길, 그 변모상 등을 상세하게 다뤘다.

그는 걷다가 망가진 국토를 볼 때면 눈물이 절로 난다. 한양과 영호남을 잇는 영남대로, 삼남대로는 수십 년 전만 해도 사람이 다니던 길이었는데 다 사라졌다. 그는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들어 역사 속의 길을 사람들이 실제로 걸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사라진 군현 90곳의 역사를 책으로 쓰고 있습니다. 100년도 안 된 시차를 두고 마을들이 사라져 흔적도 없어요. 인간의 역사가 이렇게 허망한가요. 그 궤적을 책으로라도 남겨 두어야죠….”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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