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 냉장고 10년… 시장을 뒤집다

  • 입력 2006년 2월 1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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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외국 제품들을 직접 사서 분석해보니 기능은 국산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같은 제품을 훨씬 싸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양문형 냉장고에 ‘다걸기(올인)’했죠.” 삼성전자 생활가전총괄 시스템가전사업부 냉기개발팀장을 맡고 있는 박용종 상무는 이 회사가 양문형 냉장고 사업에 뛰어든 1990년대 중반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국내 양문형 냉장고 시장은 미국 월풀, 제너럴 일렉트릭(GE) 등 외국 제품의 비중이 94%를 넘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거꾸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가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그 사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 가격과 기술력의 승리

무엇보다 비슷한 제품을 훨씬 싼값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게 주효했다.

1997년 4월 삼성전자가 처음 내놓은 600L대 용량의 ‘지펠’ 양문형 냉장고의 가격은 205만 원. 월풀(328만 원)이나 GE(398만 원) 제품 가격의 절반 정도였다. LG전자도 1998년 700L대 제품을 외국산의 절반 가격인 200만 원대에 내놨다.

반면 외국산 제품들은 물류비와 세금 등 때문에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없었다. 당시 외환 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크게 상승(원화가치 하락)한 것도 외국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국내 업체들은 또 냉장고 소음이나 소비전력 절감, 냉각 기술 개발 등에서도 외국 제품을 앞섰다. 게다가 국내 업체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애프터서비스에서도 외국 업체들을 따돌림으로써 국내 양문형 냉장고 시장을 장악하게 된 것.

박형일 LG전자 부장은 “냉장고는 개발된 지 100년도 넘었기 때문에 회사별 기능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며 “기술력으로 가격을 얼마나 낮추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 세계 시장도 노린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양문형 냉장고는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34개 국가에서, LG전자 양문형 냉장고 ‘디오스’는 11개 국가에서 각각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무기’는 냉동실과 냉장실에 각각 냉각기를 달아 음식 냄새가 퍼지는 것을 막아 주는 ‘독립 냉각 방식’이다. LG전자는 냉장고의 소음과 전력을 크게 줄여 주는 자체 개발 압축기를 앞세워 세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LG전자는 또 양문형 냉장고에 TV나 액정표시장치(LCD) 화면을 달거나 인터넷을 연결하는 등 디지털 컨버전스(융합) 제품도 잇따라 내놓으며 틈새시장도 노리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이렇게 양문형 냉장고 개발 및 판매에 주력하는 이유는 이 시장이 매년 크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2도어 냉장고 시장은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포화 상태에 이르렀지만, 양문형 냉장고는 이때부터 꾸준히 시장이 커지고 있다.

가전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양문형 냉장고 시장 규모는 8500억 원, 세계 시장은 5조6000억 원. 세계 시장 규모는 매년 4000억∼5000억 원씩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의 양문형 냉장고 판매증가율 (단위:%)
1998년1999년2000년2001년2002년2003년2004년
삼성전자2526012045604530
LG전자136400245130150115105
증가율은 전년대비 판매증가율. - 자료: 각 회사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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