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의 고장 美피츠버그는 ‘변신중’

  • 입력 2006년 2월 13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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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개월 동안 한국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한 외국 도시를 꼽으라면 아마 미국 피츠버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경제와 문화의 도시 뉴욕, 정치와 외교의 도시 워싱턴도 많은 뉴스를 쏟아냈지만 황우석(黃禹錫) 서울대 교수의 연구 파트너였던 제럴드 섀튼(피츠버그대 의대) 박사와 2006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슈퍼볼 MVP인 한국계 하인스 워드(피츠버그 스틸러스) 선수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7일 온 도시를 뒤흔든 스틸러스 카퍼레이드가 펼쳐지면서 상징 색인 노란색 손수건이 도심을 뒤덮었지만 펜실베이니아 주 서부의 중심지인 이 도시의 첫 인상은 어둡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1990년대 최장기 호황을 맞아 미국의 주요 도시가 앞 다퉈 새 고층건물로 단장했지만 피츠버그는 좀 예외였다. 미국 제조업의 위기로 기반이 무너진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녹슨 도시지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피츠버그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의 대장간’이란 별명을 얻었던 철의 도시였다. 워드가 속한 풋볼 팀 이름도 스틸러스(Steelers·철인들)일 정도. 그러나 신일본제철(일본) 포스코(한국)가 등장하면서 도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한때 30만 명을 고용했던 철강회사 USX의 현지 직원은 5000명 선으로 떨어졌다. 현재 이 도시의 최대 고용주는 피츠버그대다.

그래도 주민의 대다수는 노동자층이다. 워드가 평소 “블루칼라를 위해 뛴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물론 도시 곳곳에는 J P 모건(USX 창업), 철강왕 카네기, 멜런 가문 등 1900년대 미국을 풍미한 부호들의 존재가 느껴진다.

변화는 토머스 머피 시장이 1994년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공무원 수를 21%(1000명) 줄였고, 40억 달러 교모의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 ‘스모그의 도시’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환경친화적 산업정책을 폈다. 그 결과 도시를 관통하던 3개의 강이 찌든 공해의 티를 벗고 매년 ‘전미 낚시대회’가 열릴 정도가 됐다.

2006년 이 도시는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 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 배후에는 카네기멜런대, 피츠버그대라는 든든한 연구 중심 대학이 존재한다. 황 교수가 피츠버그대 의대와 손잡은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한국과의 인연도 간단치 않다. 이현재(李賢宰) 이수성(李壽成) 전 국무총리, 나웅배(羅雄培) 전 경제부총리가 피츠버그대에서 교환교수 생활을 했고 교육부총리를 지낸 이상주(李相周) 성신여대 총장은 박사학위 과정을 이수했다. 미국의 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보다 뛰어났다”고 극찬한 이휘소(李輝昭·1977년 작고) 박사도 이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애틀랜타=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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