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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태효]시사만화가 촉발한 종교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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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태효]시사만화가 촉발한 종교갈등

입력 2006-02-13 03:08수정 2009-10-0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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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회가 가장 격렬하게 다퉈 온 주제가 바로 종교다. 종교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 가장 많고, 전쟁이 아니더라도 종교 때문에 희생된 목숨이 그 어떤 다른 사회 갈등에 의한 피해보다도 크다. 작년 9월부터 덴마크의 최대 일간지 윌란스포스텐이 이슬람교의 예언자 마호메트를 풍자한 시사만화 시리즈를 게재하면서 증폭되기 시작한 유럽-중동 간 갈등 사태를 보노라면 종교가 내포하는 폭발력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올해 1월 초에 덴마크 검찰은 시한폭탄 모양의 터번을 두른 마호메트를 묘사한 만화가 신에 대한 불경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고,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등 여타 유럽국들이 가세하여 문제의 만화를 다시 싣거나 새로 응용한 마호메트 풍자만화를 선보이면서 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어 왔다. 중동권에서 유럽 주재 자국 대사의 소환, 폭력적 규탄 시위, 덴마크 상품 불매운동 등으로 응수하면서 흡사 기독교-이슬람 간 충돌의 해묵은 역사를 연상시킨다. 만화를 제대로 보지도 못한 사람들까지 나서서 분노하며 항전을 외친다.

침해받는 쪽은 과연 어디인가. 언론의 표현의 자유인가, 아니면 이슬람교의 신성성인가. 서방 사람들은 마호메트 만평에 무슬림들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무슬림들은 거꾸로 서방인들의 감각이 왜 그렇게 무딘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유럽-중동 간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본질적인 요인을 간과하는 이상, 만화가 아닌 그 어떤 작은 해프닝으로도 폭력과 전쟁이 빚어질 수 있다. 이란 핵 문제, 팔레스타인 테러 문제가 현재 세계 안보의 첨예한 쟁점일진대, 이번 만화 사태는 중동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단적으로 말해 중동의 문제는 대중의 빈곤과 엘리트의 권력 독점으로 대비되는 이중구도에 의해 가일층 증폭된다. 탈레반과 이라크의 무장세력 지도자들이 공공연히 밝히듯, ‘중동을 핍박하고 침략해 온 외부인들’인 서구 세계가 곧 그들의 투쟁 대상인 것이다. 게다가 이스라엘과의 기나긴 투쟁을 거치면서 궁핍에 시달려 온 무슬림들에게 피해의식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미국과 유럽은 평화의 중재자를 자처하지만 대중은 그들을 쉽사리 위선자로 규정하고 만다. 종교는 믿음을 넘어서 몰입의 대상이 되기 쉽다. 더욱이 종교지도자들이 세속 권력까지 장악하고 있는 중동국의 경우, 종교의 지나친 절대화는 계급 타파와 민주화의 기운을 억제하는 최면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제의 발단이 된 윌란스포스텐 신문이 지난달 30일 편집국장 명의로 사과 성명을 발표한 이후에도 중동의 분노는 가시지 않았다. 이슬람교를 모독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덴마크 법에도 저촉되지 않지만 사태의 파장을 고려하여 사과한다는 취지로는 성난 군중의 마음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2월 8일 프랑스의 한 주간지가 마호메트가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바보들한테 사랑받기 힘드네”라며 한탄하는 장면을 실을 수 있었던 것도, 아직도 많은 유럽인의 눈에는 무슬림들이 바보스럽고 먹여 살려야 할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중동 사람들의 서구사회에 대한 불만을 기회만 생기면 확대 재생산하려 한다. 압박과 봉쇄정책만으로 이들을 뿌리 뽑기란 힘들다. 최근 미국의 몇몇 국제정치 전문가가 제기하듯, 민주주의 선거를 강제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은 서로 별개라는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유사한 언어와 혈통을 매개로 하는 아랍민족주의가 폭력과 테러를 정당시하는 이슬람근본주의의 선동에 놀아나지 않도록 하려면 이제부터라도 중동의 실질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국제사회가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발전은 개방화를 의미하고, 이는 곧 민주주의의 토양인 다원주의를 촉진할 것이다.

세계 10대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외치는 우리 한국은 외부 세계에 대한 막연한 분노로부터 정녕 자유로운가. 일제강점기, 6·25전쟁, 남북 분단을 아직도 바깥 세력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외부에 적을 만들어 집안의 권력에 쓰려 하는 세력이 발붙이지 못할 때 한국은 비로소 선진사회로 불릴 것이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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