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小說 선정… ‘만년필’-‘명랑한 밤길’

  • 입력 2006년 2월 11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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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찬호(47) 씨의 시 ‘만년필’과 공선옥(42) 씨의 소설 ‘명랑한 밤길’이 지난해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 중 가장 좋은 시와 소설로 꼽혔다.

도서출판 작가(대표 손정순)가 시인, 평론가, 출판편집인 등 162명에게서 추천받아 선정한 ‘오늘의 시’로는 송 씨의 ‘만년필’(현대문학 10월호)이 18표를 받아 최다 득표했다. 시집으로는 김명인(60) 씨의 ‘파문’이 20회로 가장 많이 꼽혔다. 소설가, 평론가, 출판편집인 등 102명으로부터 추천받은 ‘오늘의 소설’에는 공 씨의 단편소설 ‘명랑한 밤길’(창작과비평 가을호)이 17표를 받아 최고작으로 뽑혔다. 작품집은 박민규(38) 씨의 ‘카스테라’가 19표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만년필>

-송찬호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한때, 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나 구름을 걸어두었다

이것으로 경매에 나오는 죽은 말대가리 눈화장을 해주는 미용사 일도 하였다

또 한때, 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으로 공원묘지에 일을 얻어 비명을 읽어주거나, 비로소 가끔씩 때늦은 후회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가을날 오후 나는 눈썹 까만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면서, 해바라기 그 황금 원반에 새겨진 ‘파카’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빛나는 만년필시대의 이름들을 추억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오래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지난날 습작의 삶을 돌이켜본다-만년필은 백지의 벽에 머리를 짓찧는다 만년필은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가 오랜 불면의 밤을 밝힌다.-어떤 수사는 모두 고통스런 지난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혼자 뒹굴어다니는 이 잊혀진 필기구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상념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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