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유쾌한 그녀의 일기장…‘아델과 유령선장’

  • 입력 2006년 2월 11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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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과 유령선장/까미유 주르디 글, 그림·노엘라 옮김/92쪽·9500원·세미콜론

‘거미, 파스타, 침대로… 이런 게 사는 거야!’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이 말은 주인공 아델이 자신의 일기장에 적힌 ‘사건’이 부엌 개수대에서 거미를 눌러 죽인 일, 저녁에 파스타를 삶아먹은 일, 피곤해서 침대로 직행한 일밖에 없다며 내뱉는 푸념이다.

아델은 날마다 혼자 중얼거린다. ‘사실은 말이지, 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거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거 말이야!’

그림과 소설을 곁들인 이 독특한 책은 아델과 등장인물들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벗어나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해 벌이는 사건들을 그렸다. 27세의 프랑스 여성작가인 까미유 주르디의 톡톡 튀는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두드러진다. 그림은 네모 칸과 말 풍선에 갇혀 있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흐르며 곳곳에 유머가 듬뿍 배어 있다.

이야기 전개방식도 독특하다. 등장인물은 어린 소녀 안나, 도서관 사서인 아델, 해적선 선장 이반, 소설가와 그의 아내다. 각각 독립적 인물 같지만 아델은 소설가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이고 안나는 소설가의 아내가 쓴 어린 시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또 이반 선장은 액자 속 그림의 주인공. 상상 속의 인물과 현실의 인물이 종횡무진 누비면서 서로를 만나고 소설가가 쓰는 아델의 이야기와 아델이 쓰는 상상 속 이야기가 경계 없이 이어진다.

무의미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델은 새 일기장을 사서 ‘멋진 사건으로 가득찬 삶’을 쓰리라 결심하고 이반 선장은 액자에서 튀어나와 세계를 여행한다. 소설가의 지지부진한 작업에 지친 아내는 소설가를 끌고 페루로 여행을 떠난다.

이들의 행복 찾기는 페루의 호수에서 결실을 본다. 행복은 대단한 사건 대신 주인공들이 상상 또는 사소한 용기를 통해 스스로를 격려하기 시작했을 때 찾아왔다. 복잡한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하다 모든 사람을 결말에 한 곳에서 만나게 하는 저자의 솜씨가 야무지다.

귀엽고 익살맞은 그림 스타일, 엄마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자 죽은 친구가 하나 더 생겼다고 좋아하다가 혼이 나는 안나의 이야기처럼 톡톡 튀는 유머도 재미있다. 원제 ‘Une araign´ee, des tagliatelles et au lit, tu parles d'une vie!’(2004년).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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