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775년 英수필가 찰스 램 탄생

  • 입력 2006년 2월 10일 05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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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은 독백이다. 소설이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 보아야 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오필리아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찰스 램은 언제나 램이면 되는 것이다.”(피천득의 ‘수필’ 중)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다. 자기 내면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수필가는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 영문학사에서 수필문학의 꽃을 화려하게 피운 영국 수필가 찰스 램(1775∼1834)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775년 2월 10일 런던의 빈한한 집안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7세에 동인도회사 회계원으로 입사해 33년을 근무하면서 시인 S T 콜리지 등과 교유했다. 21세 때인 1796년에는 정신병을 앓던 누이 메리가 발작을 일으켜 어머니를 살해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램은 열한 살 연상의 미친 누이를 돌보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같이 지냈다.

남매는 1806년 셰익스피어 희곡 요약판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함께 펴냈다. 이 책을 어린이용으로 번역했던 소설가 현기영은 “‘비극’은 램 자신이 집필하고 ‘희극’은 누이에게 맡겼던 것은 아마도 누이의 건강을 염려하는 램의 자상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라고 저간의 사정을 추측했다.

램은 1820년 ‘런던 매거진’에 ‘엘리아’라는 필명으로 ‘엘리아 수필집’을 연재하면서부터 영국 문단 최고의 수필가로 인정받게 된다. 그의 수필은 삶에 대한 섬세한 통찰과 톡 쏘는 위트로 가득하다.

“내가 독신인 까닭에 결혼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엄청난 즐거움을 놓치고 있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여러 가지 약점을 적어 두는 것으로써 스스로 마음을 달래려고 한다.”(‘기혼자의 거동에 대한 미혼 남자의 불평’)

그는 50세에 동인도회사를 정년퇴직하게 되자 ‘비로소 자유롭게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나 3년 후 자기의 퇴직을 축하해 주던 여직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바빠서 글 쓸 새가 없다는 사람은 시간이 있어도 글을 쓰지 못하는군요. 좋은 생각도 바쁜 가운데서 떠오른다는 것을 깨달았소. 아가씨는 부디 내 말을 가슴 깊이 새겨 언제나 바쁘고 보람 있는 나날을 꾸며 나가기 바라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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