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

  • 입력 2006년 2월 10일 03시 28분


코멘트
지난달 찾아간 백담사는 계곡을 끼고 흐르는 냇물이 장관이었다. 바닥의 얼음 위를 흐르는 물은 비취색을 띠며 쌓여 있는 눈과 바위와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켰다. 예쁜 색시를 훔쳐보듯 곁눈질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고 이런 글귀를 떠올렸다. “산은 산이요, 강은 강이다.”

현상적인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산과 강을 마음으로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를 말하고 싶다.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이지만, 우주의 순리(順理)라는 관점에서 이들을 보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특히 물이 흐르는 모습에서 순리를 읽을 수 있다. 물은 물길을 만들어 흘러가면서 스스로는 철저히 부서져 버린다. 가파른 곳을 내려갈 때는 급하게, 완만한 곳에서는 유유히, 자신의 모습을 지형에 맞추어 나간다. 우리는 인생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살려는 마음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일상의 삶에서 그것을 풀어헤치는 데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가 보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런 순리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르기까지 겪는 수많은 변형과 아픔을 순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우리도 인생의 여정을 그런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아름답고 순수하게 살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 세상은 그런 순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방약무인(傍若無人)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의 가치관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소리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분명 알아야 할 것은 손가락질할 때 검지는 상대를 향해, 엄지는 하늘을 향해,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때는 하늘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고, 나 자신을 세 번 쳐다본 뒤에야, 상대에게 검지를 내밀라는 뜻이 아닐까.

제병영 예수회 신부·서강대 상임이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