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 분자 여럿 붙을수록 덜 달아
설탕은 당 분자 두 개가 연결돼 있다. 당 분자의 기본 구조는 다각형의 탄소 고리 주변에 다양한 가지들이 붙은 형태(그림). 분자 하나로 이뤄진 당을 단당류, 두 개는 이당류라고 한다. 설탕은 단당류인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한 이당류다.
언뜻 생각하기에 당 분자가 여럿 연결될수록 더 달 것 같다. 그러나 다당류로 갈수록 단맛은 오히려 줄어든다. 정확한 메커니즘은 알 수 없지만 입안에서 녹을 때 ‘유연하게’ 구조가 변할수록 단맛을 많이 내는 것으로 추측된다. 한 예로 포도당은 물에 녹아 있을 때 탄소 고리가 풀어져 막대 모양이 되기도 하고 가지들이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포도당이 여러 개 붙어 있으면 이런 변화가 덜 일어난다.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신세대 당은 역시 단당류나 이당류다. 단맛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당류보다 덩치가 작아 다루기가 쉽다. 그 대신 일부 구조를 바꾸면 달지만 살찔 걱정 없는 당으로 변신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시스템미생물연구센터 이대실 박사는 “당 분자의 구조를 바꾸면 원소들의 조성이 변하면서 당 분자가 내는 열량도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예가 단당류인 과당의 구조를 약간 변형한 사이코오스. 세종대 생명공학과 오덕근 교수는 “사이코오스는 체내에서 지방을 합성하는 단백질(효소)의 활동능력을 떨어뜨린다”며 “단맛은 취하되 지방은 늘리지 않는 일거양득 효과가 발휘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유 제조공정에서 남아 버리는 성분 중에 인체 내에서 전혀 열량이 발생하지 않는 타가토오스도 연구대상”이라고 덧붙였다.
오 교수는 이 두 가지 당을 미생물에서 대량으로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 잘 쓰면 약 된다
일본 라이켄 뇌연구소의 연구팀은 2004년 1월 헌팅턴병에 걸린 생쥐에게 트레할로오스를 투여한 실험 결과를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헌팅턴병에 걸리면 온몸의 근육이 마비돼 사지의 운동은 물론 배뇨도 못하게 된다.
헌팅턴병의 한 가지 원인은 체내 근육 단백질 일부에서 글루타민이라는 아미노산(단백질의 구성 단위)이 비정상적으로 과도하게 반복된 것. 연구팀은 2% 농도의 트레할로오스를 생쥐에 투여하자 글루타민끼리 잘 결합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같은 농도의 포도당을 투여했을 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캐나다 다트머스히치콕 메디컬센터의 연구팀은 지난달 22일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서 표면에 당 사슬을 붙인 항체를 미생물에서 대량으로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항체 표면의 사슬 구조를 변형시키자 암세포와 결합하는 능력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밝혔다. 보통 항체는 암세포를 비롯한 체내 유해물질(항원)을 공격하기 위해 일단 표면의 당 사슬을 이용해 상대를 인지한 후 결합한다.
만일 열량도 없고 단맛을 극대화시킨 당 사슬을 만들어 항체 표면에 붙인다면 어떨까. 설탕처럼 단맛을 내는 ‘달콤한 치료제’가 등장할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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