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비확산’ 이중잣대?

  • 입력 2006년 2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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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에 이용된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면 원자력발전 연료로 재생할 수 있다.

하지만 재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플루토늄은 핵무기의 연료가 된다. 그런 위험성 때문에 미국은 1976년부터 핵연료의 재처리를 금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30년 이상 유지해 온 이 같은 정책을 바꿀 계획인 데다, 덩달아 일본도 독자적인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어 국제적 논란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미국의 정책 U턴=미 에너지부는 조만간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재개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한 이른바 ‘글로벌 핵에너지 협력(GNEP)’ 구상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정책 전환 근거는 이른바 ‘UREX+’라는 새로운 재처리 기술.

UREX+ 기술은 사용 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과 다른 방사성 요소들을 제거해 원자력발전용으로는 사용할 수 있지만 핵무기 제조에는 사용하기 어렵도록 만드는 기술이어서 핵 확산 우려가 없다는 것.

나아가 미국은 재처리 능력이 없는 국가들에서 사용 후 핵연료를 회수해 재처리한 뒤 이를 다시 공급해 주는 방식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적인 핵물질 관리체제를 확립할 계획이다.

사실상 핵 강국들만의 공급체계를 만들어 핵물질 유출을 막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핵기술 가속화=일본은 이달 중 로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공장의 실험가동을 앞두고 있다.

일본은 그동안 해외에서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이미 40t이 넘는 플루토늄을 비축하고 있다. 핵무기 수천 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이런 상황에서 7일 일본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우라늄과 혼합해 기존 원자력발전 연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플루서멀’ 계획을 계속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이 계획에 고심해 왔던 사가(佐賀) 현이 그 안전성에 동의한 것이다.

그간 뚜렷한 용처가 없이 플루토늄을 과잉 비축해 국제사회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아 온 일본으로선 플루토늄 비축은 물론 로카쇼무라 핵연료 재처리 시설도 가동할 명분을 얻게 된 셈이다.

▽비판론 확산=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핵무기로 쓰일 수 있는 플루토늄의 추출과 상업적 사용을 정당하게 해 줌으로써 핵무기 비확산 체제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군축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이 이란 북한 등 잠재적 핵 확산 국가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란엔 핵연료인 농축우라늄마저 생산하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마당에 수십 년 동안 금지해 온 핵연료 재처리를 재개하겠다면 이란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아가 핵무기 비보유국으로는 유일하게 자체 핵연료 사이클을 갖게 될 일본에 대해선 ‘특혜 시비’를 낳을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8일 “독자적 핵연료 공급체계를 갖고자 하는 국가들에서 ‘왜 일본만 국제관리를 받지 않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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