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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펀드]믿고 맡기라더니 “돈 안된다” 수년째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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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펀드]믿고 맡기라더니 “돈 안된다” 수년째 방치

입력 2006-02-09 03:03수정 2009-10-08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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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펀드가 우리 회사 펀드라고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

본보가 고객이 맡긴 돈의 합계인 수탁액이 10억 원 미만인 ‘자투리 펀드’의 운용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한 자산운용사에 전화를 걸어 담당 펀드매니저를 바꿔 달라고 하자 이런 반응을 보였다. 다른 자산운용사들도 펀드 이름을 확인하고 담당 펀드매니저를 찾는 데 한참이 걸렸다. 취재 결과 대부분 자투리 펀드는 다른 주요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매니저들이 ‘곁다리’로 함께 관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많은 자투리 펀드 때문에 펀드매니저 한 명이 4, 5개 펀드를 동시에 운용하는 것도 다반사다. 이런 펀드에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자투리 펀드는 결국 고객의 피해

한국 자산운용 업계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펀드를 너무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다.

자산운용사는 펀드의 단기 수익률이 좋지 않으면 추가 판매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곧바로 정상적인 운용을 포기하고 마케팅도 중단한다.

그 대신 같은 펀드매니저가 같은 철학으로 운용하는 펀드를 새로 만든 뒤 그럴싸한 새 펀드 이름을 붙여 판매한다. 마치 새로운 운용기법을 적용하는 새 펀드인 것처럼 포장만 바꿔 고객을 유혹하는 것.

자산운용사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이 바뀌면 새 경영진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이름의 펀드가 만들어진다. 펀드를 판매하는 은행의 요구에 따라 기존 펀드를 포기하고 새 펀드를 내놓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문가들은 “펀드에 가입하려면 이왕이면 새로 나온 펀드에 가입하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새로 나온 펀드일수록 회사가 신경을 더 많이 쓰고 펀드매니저들도 정성을 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확산될수록 펀드매니저는 주력 펀드에 집중하게 돼 자투리 펀드는 더 소외된다.

한 펀드매니저는 “종목을 사고팔 때에도 주력 펀드부터 매매 주문을 내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그 피해는 고객의 몫이 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 씨는 1999년 증권사 직원의 권유로 펀드에 수억 원을 넣었다. 당시 그를 담당했던 증권사 직원은 “전문가에게 돈을 맡기면 이것저것 신경쓸 것 없어 편하다. 전문가를 믿고 장기 투자하라”고 권했다.

펀드에 별 신경을 쓰지 않던 A 씨는 최근 알고 지내던 펀드평가회사 임원에게 자신이 투자한 펀드에 대해 물었다.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가입한 펀드에 돈을 맡긴 사람은 A 씨 단 한 명이고 펀드는 사실상 몇 년째 방치돼 있었던 것.

A 씨는 “믿고 장기 투자하라더니 고객의 돈을 몇 년째 방치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자투리 펀드 중에는 수익률이 형편없는 게 많다. 1999년 설정된 S운용사의 한 주식형 펀드의 수탁액은 275만 원. 이 펀드의 현재 가치는 100만 원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 세계 3위의 ‘소형 펀드’ 강국

자투리 펀드는 방치돼 있고 새 펀드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한국은 펀드가 많기로 유명한 나라가 됐다.

미국 투자신탁협회 발표에 따르면 2004년 기준 한국의 펀드 수는 6479개로 세계 4위다. 하지만 3위인 룩셈부르크는 조세회피지역으로 이 나라 펀드가 대부분 역외(域外) 펀드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사실상 세계 3위인 셈.

게다가 펀드 수는 늘어나고 있다. 소형 펀드를 없애겠다는 금융감독원의 방침 덕에 2004년까지 조금씩 줄어들던 펀드는 지난해 800개 이상 늘었다.

반면 펀드 1개당 운용자산 규모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미 투신협회에 따르면 한국 펀드는 운용자산 규모에서 조사 대상 39개국 가운데 33위다.

○ 매년 수수료는 꼬박꼬박 떼 가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와 펀드를 판매하는 은행 및 증권사들은 “작은 펀드를 없애고 큰 펀드에 합치려 해도 고객과 연락이 안돼 그냥 두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펀드를 파는 은행과 증권사들은 펀드를 한 번 판 뒤에도 매년 순자산의 1.7%가량(주식형 펀드 기준)을 수수료로 떼 간다.

판매 때만 받는 게 아니라 해마다 이 비율대로 수수료를 뗀다. 이유는 “고객을 꾸준히 관리하려면 비용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

고객을 관리하려고 매년 1.7%의 수수료를 떼면서 정작 고객의 연락처를 몰라 고객 돈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현행 규정상 자투리 펀드를 해지하고 다른 펀드와 합병을 하려면 고객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수익자 총회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비용이 만만치 않고 과정이 복잡해 자산운용사들이 의도적으로 회피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감독원 박광철(朴光喆) 자산운용감독국장은 “10억 원 미만짜리 소형 펀드는 운용이 사실상 어려운 만큼 단계적으로 없애거나 대형 펀드와 합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 해법은 없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펀드로는 단연 미국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의 마젤란펀드가 꼽힌다.

1963년 만들어진 이 펀드는 1999년 한때 자산 규모가 1000억 달러(약 100조 원)를 넘었다. 투자자들은 이 펀드를 부를 때 항상 ‘그 유명한(that famous)’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이 때문에 ‘그 유명한 마젤란펀드’는 마치 고유명사처럼 불렸다.

한국에는 ‘그 유명한 마젤란펀드’처럼 운용자금 규모가 크고 역사도 긴 이른바 장대(長大) 펀드가 없다.

국내 주식형 펀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은 2조 원 정도다. 또 역사가 오래된 펀드일수록 대부분 구식이고 수익률도 형편없다. 실제로 418개 자투리 펀드 가운데 300개가량이 2000년 이전에 만들어진 펀드다.

장대 펀드가 없다 보니 고객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기를 끌고 있는 펀드에 가입하려 해도 그 펀드가 제대로 운용됐는지, 과거 어떤 기록이 있는지 등을 찾을 수 없다. 최근 인기를 끄는 펀드는 대부분 만들어진 지 1년 정도 된 신생 펀드이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잘못 가입하면 2, 3년 후에는 자신이 가입한 펀드가 자투리 펀드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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