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회갑맞은 강은교 시인 시집 ‘초록 거미의 사랑’ 펴내

  • 입력 2006년 2월 9일 03시 03분


코멘트
시인 강은교 씨는 “시는 시인의 것만이 아니라 독자와 나누는 것”이라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창비
시인 강은교 씨는 “시는 시인의 것만이 아니라 독자와 나누는 것”이라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창비
《강은교 씨가 최근 열한 번째 시집 ‘초록 거미의 사랑’(창비)을 펴냈다.

부산에 살고 있는 강 씨는 지난달 회갑을 맞았다. 그래서 이번 시집은 그에게 더욱 의미가 깊다.

그는 8일 전화선을 통해 회갑을 지낸 소감부터 밝혔다.

“이제 편안해졌다. 지난해에는 ‘정신적인 발광’에 시달렸다. 다가오는 회갑이 말할 수 없이 묵직한 데다 나이 듦이 세상으로부터의 소외로 여겨져 힘들었다.”》

그러다가 지난달 평론가 15명의 헌정 비평집 ‘강은교의 시세계’(천년의시작) 출판기념회를 치른 뒤 괴로움이 걷혔다고 했다. 그는 “요즘엔 생전 안 입던 한복을 입고 다닌다”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근황을 전했다.

‘강은교’라는 이름의 울림에 설레는 독자들에게 ‘초록 거미의 사랑’은 반갑고도 낯설다. 이번 시집에서는 그간 시인이 집중해 온, 작고 사소한 것들의 의미를 캐내는 작업이 계속되는 한편, 노래를 듣는 것처럼 어깨가 들썩여지는 시구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치렁치렁하고 흥겨운 이 시편들은 물론 시인이 언어를 정교하게 짠 것이지만, 이전의 강은교 시집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다. 특히 3부 ‘가야소리집’이 그렇다.

‘우리 엄마는 종/물을 가져오라면 물을 가져오고/배를 내밀라면 배를 내밀던 종…우리 엄마는 종/나는 어둠의 잎/우리 엄마의 배는 어둠의 배/물을 가져오라면 물을 가져오던 어둠의 배’(‘아직 태어나지 못한 아이의 편지2’에서)

노래 같은 시편들은 시인이 관심을 가져온 ‘시 치료’와도 관련이 깊다. 강 씨는 “문자가, 문학이 약해진 시대에 시가 맡아야 할 중요한 역할은 치유와 치료의 기능”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시는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독자들과 만나 북을 치면서 시를 들려주는 공연을 4년째 펼치는 것으로 이 믿음을 실천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몇 편의 시에 등장하는 L.J.N.이라는 머리글자가 눈길을 끌었다. 시인 임정남(1944∼2005)의 이니셜이다. 두 사람은 11년 전 이혼했고 임 씨는 지난해 4월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을 민중운동가로 사느라 가족뿐만 아니라 제 몸도 온전하게 돌보지 못했던 임 씨에 대한 미움이 오랫동안 마음에 있었는데, 지난해 여름 느닷없이 추모시가 터져 나왔다고 했다.

‘시인이 직업인 시인들이 많고 많은 세상에/시인이 결코 직업이 되지 못하였던 당신이여…당신이 옳았다. 세상에 노래 몇, 마치 내던지듯 울리지 않은 당신의 가슴줄이 옳은 것이었다.’(‘어떤 회의장에서-L.J.N.을 추모하며’)

미움 대신 기억을 넉넉하게 보듬는 마음을 갖게 된 데 대해 강 씨는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를 발표하기 전에 딸에게 먼저 들려준다. 딸의 모니터링을 거치지 않고서는 마음 놓고 시를 발표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 시집에는 ‘초록 거미의 사랑’ ‘금빛 콩나물’ 등 색채 감각이 도드라진 시편이 적지 않은데, 미술을 전공한 딸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것 같단다. 예전과 달라진 부분이기도 하다. 강 씨는 “나는 언제나 다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해 왔다”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그것은 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차분하고 또렷하게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