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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젊은오빠’ 갈채는 살아있다…나훈아, 데뷔 40주년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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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젊은오빠’ 갈채는 살아있다…나훈아, 데뷔 40주년 공연

입력 2006-02-08 03:11수정 2009-10-0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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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와 ‘SS501’, 그리고 나훈아. 최근 콘서트 티켓 판매를 휩쓰는 ‘빅 3’다. 7일 현재 인터넷 티켓 판매 사이트 ‘티켓링크’의 콘서트 티켓 예매 랭킹 1위에는 나훈아의 이름이 올라 있다. 티켓 판매 예매율은 41%. 2위와 3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동방신기’와 ‘SS501’의 콘서트 티켓을 단독으로 판매하는 티켓 판매 사이트 ‘인터파크’에서는 두 그룹이 1, 2위이지만 이 사이트에 배정된 나훈아의 공연 티켓 1800장은 판매 시작 2주 만에 이미 매진됐다. 3월 25,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40주년 콘서트 ‘마흔번째 봄’을 여는 나훈아(59). 환갑을 바라보는 그가 여전히 팬들을 콘서트장으로 불러 모으는 힘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관객 마음 움직이는 아날로그 콘서트

“고마 손 한번 꼭 잡아 주이소.”

나훈아가 콘서트 중 자주 객석을 향해 던지는 이 말은 코미디 프로그램 등에서도 패러디되는 유행어다. 40년간 나훈아 공연의 사회를 단골로 맡아 온 진행자 이상벽(59) 씨는 그의 ‘아날로그적’ 공연 방식을 인기 비결로 꼽는다. 이 씨는 “첨단 기계를 이용한 현란한 영상 쇼 대신 객석으로 내려가 관객의 손을 잡는 친근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관객에 강한 호소력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아날로그적인 접근은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다.

나훈아의 소속사인 아라기획의 윤중민 대표는 “공연 기획부터 이벤트, 콘서트 진행 방식, 의상까지 모두 나훈아 스스로 고안하며 구체적인 내용은 소속사 직원들에게도 함구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한강 노들섬에서 있었던 ‘나훈아의 아리수’에 등장한 거북선 모형이나 말을 타고 나훈아가 무대에 등장한 것 등은 모두 그 자신의 아이디어.

후배 가수들은 그의 무대 장악력을 교과서로 삼는다. 트로트 가수 장윤정은 “선배님은 공연 시작부터 말 한마디 없이 노래만 부르다가도 관객들이 지루할 때를 정확히 알고 어느 순간 멈추어 토크쇼를 벌이는 등 객석을 쥐락펴락한다”며 관객의 심리를 읽는 그의 동물적인 감각을 꼽았다. 가수 싸이는 “포크와 전통 북치기, 피아노와 꽹과리 등을 종횡무진 오가는 그의 ‘퓨전 연출력’은 세계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육질 몸과 신비주의 마케팅

인터넷 이용에 서투른 50, 60대 중년 여성들도 나훈아 콘서트라면 돋보기를 쓰고 마우스를 클릭해 티켓을 구입한다. ‘나사모’, ‘아리수월드’, ‘나훈아닷컴’ 등 팬클럽 사이트에는 오전 시간에도 50명 이상의 중년들이 접속해 있다. 이들이 나훈아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탄탄한 몸매, 검은 피부에 불룩거리는 근육은 중년 섹시미의 표본이다. ‘나사모’ 운영위원장인 김무철(49) 씨는 “잘생긴 건 아니지만 단단한 체구에서 범접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심리전문 웹진 ‘슈레21’ 대표 최창호(심리학) 박사는 “나훈아는 방송에는 잘 출연하지 않고 라이브 무대에서만 근육질 몸을 보여 주기 때문에 더 신비해 보인다”며 “가뭄에 콩 나듯 나훈아의 몸을 보는 중년 팬들은 그의 성적인 매력을 ‘젊음’으로 해석해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구를 나훈아에 대한 열광으로 대리만족한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나훈아의 트로트 40년

나훈아의 데뷔 시절 그의 곁에는 늘 ‘라이벌’ 남진이 있었다.

촌부(村夫) 이미지의 나훈아에 비해 1년 앞서 데뷔한 남진은 도시적인 모습에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케 하는 흥겨운 춤으로 사람들을 압도했다. 그러나 나훈아는 1966년 데뷔곡 ‘천리길’부터 서민적이고 감칠맛 나는 창법으로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 발표한 ‘물레방아 도는데’나 ‘고향역’ 등은 당시 한국사회가 겪었던 이농이나 고향 잃은 사람들의 애틋한 심정을 표현해 공감을 이끌어 냈다.

1980년대 들어 그는 ‘싱어송 라이터’로 변신했다. ‘울긴 왜 울어’, ‘잡초’, ‘무시로’, ‘영영’ 등의 자작곡을 발표하며 그는 ‘트로트 가수 나훈아’에서 ‘뮤지션 나훈아’로 변신했다.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 ‘H.O.T.’ 등 댄스뮤직의 인기로 트로트 음악이 위기를 맞자 나훈아는 ‘부모’ 등 전통형 창법의 트로트를 더욱 고수했다. 이것이 오히려 나훈아를 확실하게 ‘포지셔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0년대 이후 그의 음악은 ‘젊은 오빠’ 이미지로 변신하고 있다. 찢어진 청바지에 기타를 드는 그는 뉴에이지, 팝 등을 수용해 ‘한국적 트로트’로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런 변신에 연출가이자 가수로서 무대를 장악하는 그의 능력이 데뷔 40년이 된 지금도 그를 현재형 가수로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임진모 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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