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스크린쿼터 축소 경제적 실익 있나

  • 입력 2006년 2월 8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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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앞서 정부가 스크린쿼터(한국 영화 의무상영 일수)를 ‘146일 이상’에서 ‘73일 이상’으로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의 논란은 주로 ‘영화산업 보호는 언제까지 필요한지’ ‘과연 영화는 통상논리로 접근하면 안 되는지’ 등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쿼터 축소가 경제적 국익 관점에서는 분명히 이익인가’를 따져보고자 한다.》

■잃는 것보다 얻을 것 많다

FTA는 한국을 선진 통상국가로 발전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문화 산업은 경제 논리만으로 풀어갈 수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영화 산업에 대한 보호조치가 용인되고 있다. 또한 영화 산업도 국가 경제와 별개의 것이 아니며, 무역협상에서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지지 않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은 스크린쿼터 제도를 인정하면서도 제한 및 폐지를 위한 협상의 대상임을 명시하고 있다.

스크린쿼터 제도는 1966년에 도입돼 한국영화 발전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우리 영화가 경쟁력을 갖춘 것이 최근 몇 년의 일이고 보면 우리 영화의 경쟁력 향상에는 다른 요인이 많았음이 분명하다. 영화 산업의 발전은 국가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정책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영화인들의 노력이 어우러져야 가능하다. 1999년부터 정부가 지원한 1500억 원 규모의 지원금도 ‘쌈짓돈’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한미 FTA를 통해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면 우리의 영화 산업도 더불어 발전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그 경제력 측면에서 보면 미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경쟁국인 중국 인도 일본의 작년 대미수출은 전년에 비해 각각 25.7%, 19.2%, 7.2% 늘었지만 우리는 오히려 5.0% 감소했다. 이에 따라 1988년 4.6%였던 한국산 상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작년에 2.6%로 주저앉았다.

이런 측면에서 한미 FTA는 미국 시장을 우리가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1.7% 정도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일부 전자제품은 5%대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FTA가 가져다 줄 시장 확대 기회는 적지 않다. 자동차와 그 부품은 관세율이 2.5%이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조금만 낮춰도 큰 도움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자동차는 한미 간에 끊임없는 통상 마찰이 있어 왔다는 점에서 FTA는 그 해결책까지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농축산물의 경우 우리의 평균 관세율은 63%로 미국의 11%에 비해 6배에 이르는 심각한 불균형 상태이기 때문에 개방의 폭이 클수록, 또 이행 기간이 짧을수록 그 타격이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농축산물은 국산품을 대체하기보다는 여타 수입국으로부터의 물량을 대체하는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밀 옥수수 콩 등 주요 곡물의 경우 이미 자급률이 매우 낮고, 쇠고기도 수입육과 한우 시장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 시장의 개방 효과에 대해서는 정량적인 예측이 더욱 어렵지만, 질 높은 서비스를 국내에 유치함으로써 조기 유학을 비롯한 교육 및 의료 분야의 과다한 해외 소비를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이처럼 한미 FTA를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국가 이익 전반을 계량하여 정부가 어렵게 내린 결정이다.

한-칠레 FTA 체결 이후 발효가 지연되는 동안 우리의 전자제품 및 자동차 업계가 현지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상당한 수출 차질을 빚었던 기억이 새롭다. 만약 우리가 미국과의 FTA를 미루다 경쟁국에 선수를 빼앗긴다면 우리 상품은 미국 시장에 발을 붙이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한미 FTA 추진을 통한 우리 경제의 도약이 없이는 문화 산업의 장래도 낙관하기 힘들 것이다.

이시형 재정경제부 경제협력국장

■보호장막 걷기엔 이르다

지난 10여 년간 영화인들의 노력으로 지켜 낸 스크린쿼터 제도는 국내 영화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그런데 최근 국내 영화관의 한국영화 상영비율이 60%를 넘어섰다는 보도와 함께 “FTA가 체결되면 국내총생산(GDP)이 2% 증가하고, 일자리가 10만여 개 창출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보호의 장막을 걷어 버리기에는 아직도 영세한 대다수 영화인들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한미 FTA 협상 개시의 최후 난제로 여겨져 왔다. 여기서 미국이 한국의 경쟁력 있는 가전제품과 휴대전화 등 공산품에 자국의 안마당을 내주면서까지 스크린쿼터 축소에 집착하고 있는 의도가 무엇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4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알렉산더’는 미국 영화인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미국 내 흥행에 실패해 당연히 적자가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흑자를 기록했던 것이다. 이는 해외 시장에서 미국 시장의 적자를 메우고도 남을 수익이 발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소니, 디즈니, 워너브러더스 등 세계 3대 영화사와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해외 부분의 파이가 이렇게 큰 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전 세계는 급속도로 하나의 시장이 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미국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분야는 크게 농축산물과 군수, 그리고 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하는 지적재산 산업 등 3개다. 이들 산업은 미국의 무역 역조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앞의 2개 분야에서는 사실 우리가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영화를 중심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좀 다르다. 이 산업에서 미국은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동안 국지적으로나마 미국 주도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균열을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동아시아 시장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이다. 한류 시장에서 한국은 마치 세계 시장에서 미국과 같은 지위를 갖고 있다.

동아시아지역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한국이 강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지속적인 유지가 필수다. 국내에서 군불을 계속 지펴야만 이 지역에서 그 호조세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스크린쿼터의 축소는 장기적으로 한류 시장의 위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호모 루덴스(유희적 인간)’로 정의되기도 하는 인간은 항상 놀이를 원하고 있고 그 시장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 게다가 중국을 비롯한 한류 소비 지역의 경제적 급성장으로 동아시아지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미국과의 FTA 체결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라는 세계에서 제일 큰 소비 시장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지렛대로 하여 중남미 시장에까지 그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공산품 시장을 내주면서까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그토록 들어오려고 하는 미국의 의도가 단지 우리의 엔터테인먼트 시장만을 겨냥한 것일까. 우리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더욱 그렇게 되어야 할 한류 시장이 그 타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 경제적 손익이 어떻게 될지도 다시 한번 따져봐야 할 것이다.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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