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계층 무상으로 집수리…공간그룹 이상림 대표

  • 입력 2006년 2월 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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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 기자
김미옥 기자
《때론 한 권의 책이 사람을 움직인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회사인 ‘공간그룹’의 대표인 건축가 이상림(51) 씨는 2년 전 그런 책을 만났다.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제자들과 함께 무상으로 집을 지어 주는 ‘루럴(Rural) 스튜디오’를 설립한 미국 건축가 새뮤얼 막비의 삶과 활동을 담은 책이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집은 영혼의 안처’라는 막비의 정신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번역까지 맡아 ‘희망을 짓는 건축가’란 책을 펴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책의 판매 수익금을 바탕으로 ‘희망의 보금자리 운동’을 새해부터 시작했다. 소외된 이웃들의 집을 무상으로 수리해 주는 일이다. 공간그룹 사옥이 있는 종로구에서 추천받은 다섯 집 중 두 집을 선정해 최근 말끔히 집 수리를 끝냈다.

서울 창덕궁 옆 공간그룹 사옥으로 찾아갔을 때 그는 “아직은 변변하게 내세울 만한 일은 아니다”며 잠시 망설인 끝에 말문을 열었다.

“거창한 게 아니라, 그저 작은 변화를 가져오고자 시작한 일입니다. 가서 묵은 짐 들어내 청소하고 도배 장판해 주고 여기저기 부서지고 망가진 곳 수리하고…. 봄이 오면 다시 찾아가 페인트칠하고 지붕에 차양도 달고 해야죠.”

해마다 열 집 정도씩 도와 나갈 생각이다. 이번에 선정된 집은 평창동에서 혼자 사는 84세 할머니와 사직동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집. 평창동 집을 가보니 방안에 거미줄이 쳐져 있었고 할머니는 난데없이 찾아온 낯선 이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부엌엔 손도 대지 말라고 거부감을 보였던 할머니는 공사가 끝날 때쯤 “평생 처음 상상하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사랑,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신 더 많은 것을 받아옵니다. 이 운동에 참여한 이들이 경제적인 가난함이 결코 정신의 가난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할 때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새로 입사한 12명의 젊은 직원이 막일꾼을 맡았고 도배와 수리 등 전문 인력은 좋은 일에 동참하겠다며 나선 몇몇 회사가 도와주었다. 막상 그는, 훈수만 두다 나왔다고 했다. “현장에 따라갔더니 직원들이 워낙 불편해해서요.”(웃음)

건축가 김수근, 장세양에 이어 공간그룹을 이끌어 온 지 올해로 10년. 해외 시장을 개척해 흔들리는 회사를 탄탄한 알짜 기업으로 탈바꿈시켰고,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과 대구 달성군 청사 등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해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두 차례 받았으며, 한국인으로는 여덟 번째로 미국건축가협회 명예회원으로 뽑히는 영예도 얻었다. 그 세월을 통해 그는 이제 사람을 위한 건축, 사람을 향한 건축을 계획하고 꿈꾸고 있다. 희망의 보금자리 운동이 튼튼하게 뿌리내려 건축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새뮤얼 막비:

사회에 기여하는 건축을 강조하고 실천한 미국의 건축가. 앨라배마 주 오번대 교수로 임명된 뒤 1992년 건축과 학생들과 함께 ‘루럴 스튜디오’를 열었다.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에 속하는 앨라배마 주 헤일 지역에서 10년 동안 소외된 흑인 이웃들을 위해 무료로 집을 지어 주었다. 2001년 57세로 타계한 뒤 미국건축가협회는 최고 영예인 골드메달을 헌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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