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스 워드]“바람처럼 달렸다, 어머니의 이름으로”

  • 입력 2006년 2월 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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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를 잡아낸 워드가 공을 두 손에 움켜쥔 채 질주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패스를 잡아낸 워드가 공을 두 손에 움켜쥔 채 질주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어머니 사랑합니다. 제 몸에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6일 미국 디트로이트 포드필드에서 열린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제40회 슈퍼볼에서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한국계 ‘흑진주’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 그는 4쿼터 초반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터치다운을 찍은 뒤 스포트라이트 대상이 됐다. 경기 중 빌 코허 피츠버그 감독이 워드의 머리를 쓰다듬고 워드가 동료 선수들과 포옹하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 등이 TV 화면을 타고 지구촌 곳곳으로 전해졌다.

미식축구 선수면 누구나 서보고 싶어 하면서도 태반이 평생 한 번도 뛰지 못하고 사라지는 꿈의 무대 슈퍼볼. 주한미군 아버지(하인스 워드 시니어)와 한국인 어머니(김영희·55) 사이에서 태어난 워드는 슈퍼볼이 열리는 디트로이트에 입성하는 순간부터 전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AP통신은 “워드를 울리려면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면 된다”라며 워드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그만큼 워드의 효심과 어머니의 헌신적인 아들 사랑은 관심의 초점이었다.

실제로 워드는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내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한다.

하인스 워드가 조지아대 재학 시절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 씨(오른쪽)와 찍은 사진. 워드는 “엄마는 나를 위해 뼈 빠지도록 일했다. 거기서 성실, 정직, 사랑 등 모든 가치를 배웠다”며 “나는 뭘 하더라도 어머니가 베푼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 말한다. SBS TV 화면 촬영

1976년 3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난 워드는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아버지가 얼마 되지 않아 영어도 서툰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면서 험한 인생을 살게 됐다. 워드는 영어를 할 줄 몰라 양육권을 얻지 못한 어머니의 품을 떠나 루이지애나 주의 할아버지에게 보내졌다. 워드는 어렵게 여덟 살이 되는 해 어머니와 함께 애틀랜타의 작은 마을에 정착했다. 워드는 어머니가 생존을 위해 하루에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꿈을 키웠다. 어머니는 접시를 닦고 호텔 청소를 하고 잡화점 계산대에서 일했다. 워드는 “시간당 4.25달러의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워드는 “흔들리던 나를 지탱해 준 건 어머니의 일하는 모습”이라고 밝힌다. 잠도 거의 안 자고 종일 일하면서도 끼니때마다 밥을 차려 주기 위해 일터에서 집으로 왔다 가곤 하는 모습에 워드는 ‘성공해야겠다’는 투지를 불사르게 됐다고. ‘공부하라’, ‘늘 겸손하라’는 어머니의 채찍질 덕분에 워드는 학업에서도 우등생이었다.

워드는 학창시절 온갖 어려움을 겪었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대학 미식축구에서 쿼터백, 와이드리시버, 러닝백 등 3개 포지션을 모두 소화하는 유례없이 다재다능한 선수로 성장했다. 포레스트파크고교, 조지아대를 거쳐 1998년 NFL에 입성했다. 키 183cm, 몸무게 97kg으로 기술이 빼어나거나 체격이 좋은 선수는 아니지만 몸을 아끼지 않는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낙천적인 인생관, 성실함으로 NFL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 연속 리시브 전진 1000야드 이상을 기록했고 프로볼(올스타전)에도 2004년까지 4년 연속 뛰었다. 개인통산 기록은 127경기 출전에 574리시브(52터치다운), 7030야드 전진.

‘제40회 슈퍼볼’ 생생화보

‘란제리볼(미녀풋볼)’ 생생화보

워드는 오른팔에 볼을 들고 웃고 있는 미키 마우스와 자신의 이름 ‘하인스 워드’를 한글로 새겨 넣었다. 워드는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인임을 자랑하고 싶어 내 이름을 새겼다”고 할 정도로 한국의 피가 섞인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워드는 “MVP로 내 이름이 호명될 때 난 믿을 수 없었다. 진정으로 바라는 꿈이 이뤄졌다”며 “이 우승은 나뿐만이 아닌 어머니의 고국 한국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워드는 어머니와 부인 시몬, 아들 제이든 등 세 식구와 함께 조지아 주 포레스트 파크에서 살고 있다. “내가 어떤 것을 해 드려도 어머니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없다”는 ‘효자’ 워드는 4월 어머니를 모시고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① 4쿼터 6분 4초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하인스 워드(오른쪽)가 시애틀 시호크스의 마커스 트로펀트를 따돌리고 43야드 패스를 잡기 위해 전력질주하며 두 손을 뻗고 있다. ② 워드가 기쁨에 겨운 듯 껑충 뛰어 터치다운 라인을 넘고 있다. AP연합

▼“조든-매직존슨 부럽잖게…”워드, 富-명예 거머쥔다▼

하인스 워드가 차지한 슈퍼볼 최우수선수(MVP)는 미국 프로스포츠 최고의 영예다.

미식축구는 미국의 개척정신을 담고 있어 미국인들이 농구나 아이스하키, 야구 등을 제치고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다. 이 때문에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는 미국 프로스포츠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슈퍼볼은 경기가 열리는 일요일(현지 시간)을 ‘슈퍼 선데이’로 부르며 전 미국인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최고의 스포츠 축제. 워드가 이런 슈퍼볼에서 MVP를 차지하며 최고의 별로 우뚝 섰으니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워드는 슈퍼볼 MVP로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쥐게 됐다. MVP에 선정된 뒤 각종 인터뷰에서 “내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워드는 벌써부터 CF 공세를 받고 있다. 월트 디즈니는 이날 2006년 ‘디즈니 월드로 간다(I'm going to Disney World)’라는 내용의 광고 모델로 워드와 함께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베테랑 러닝백 제롬 베티스를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월트 디즈니 광고엔 뉴욕 자이언츠를 슈퍼볼 우승으로 이끈 필 심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를 슈퍼볼 정상에 올려놓은 조 몬태나를 비롯해 미국프로농구(NBA) 스타인 매직 존슨(LA 레이커스)과 마이클 조든 등 유명 스포츠 스타가 출연했다. 워드도 이들 스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워드는 지난해 9월 계약금 1200만 달러를 포함해 4년간 2580만 달러(약 260억 원)에 피츠버그와 재계약했다. 1998년 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 92순위로 입단할 때의 연봉이 15만 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것이다. 하지만 이제 또다시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게 생겼다.

▼슈퍼볼이란…미국인 1억3300만명 시청 ‘슈퍼 이벤트’▼

슈퍼볼(Super Bowl)이란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양대 콘퍼런스인 내셔널콘퍼런스(NFC)와 아메리칸콘퍼런스(AFC)의 챔피언들이 맞붙는 단판 승부의 왕중왕전. 올해로 40회를 맞는 슈퍼볼은 ‘경기 일정이 겹치면 대통령 취임식도 연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다.

올 슈퍼볼 초당 TV 광고료는 8000만 원이었으며 TV 시청자는 무려 1억33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NFL 슈퍼볼은 미국 3대 스포츠인 미국프로농구(NBA),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최강전보다 더 미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NFL은 NFC 16개 팀, AFC 16개 팀이 팀당 16경기의 정규리그를 펼친 뒤 12개 팀(콘퍼런스 6개 팀)이 플레이오프에 올라 토너먼트로 최강자를 가린다.

슈퍼볼 챔피언에게는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가 주어진다. 이 트로피는 슈퍼볼이 처음 열린 1967년부터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던 그린베이 패커스의 감독인 빈스 롬바르디의 이름을 따 만든 것이다.

‘제40회 슈퍼볼’ 생생화보

‘란제리볼(미녀풋볼)’ 생생화보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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