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3년 4H운동 보급 앤더슨씨 사망

  • 입력 2006년 2월 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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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두뇌) Heart(마음) Hand(손) Health(건강)의 첫 글자를 딴 4H 운동은 일종의 실천적 사회교육운동이다. 창의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행동을 통해 청소년을 미래의 주역으로 키우고 농어촌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이 운동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시작됐다. 당시 급격한 공업화로 농촌 경제가 위축되면서 장차 농촌을 지킬 후계 세대마저 끊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됐다. 이에 교직자와 농촌 지도자들은 조직적으로 자연과 농업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4H 운동에 나섰다.

1910년대에는 네잎 클로버 문양에 지(知) 덕(德) 노(勞) 체(體)를 표상으로 하는 4H 클럽이 조직됐다.

이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인 독일 일본 등에 미군이 주둔하고 신생국들이 미국의 군사 및 경제 원조에 의존하게 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4H 클럽 출신 인사가 다수 포함된 미군이나 미국 고문단은 주둔국의 농촌 재건과 청소년 교육을 위해 4H 운동을 보급시켰다.

한국에 4H 운동이 처음 소개된 것도 미군정 때였다. 1947년 경기도 군정관이던 찰스 앤더슨 중령은 구자옥(具滋玉) 경기도지사와 함께 4H 운동을 경기도에 도입하기로 하고 각 시군에 농촌청년구락부를 결성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첫 싹을 틔운 4H 운동은 1952년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채택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1953년 발족한 한미재단에 예비역 대령이 된 앤더슨 씨가 고문으로 부임(1954년)하면서 4H 운동은 날개를 달게 됐다.

1954년 민간후원단체인 한국4H구락부중앙위원회가 결성됐고 제1회 4H중앙경진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정부의 정책적 후원을 바탕으로 4H 운동은 전후 복구와 농촌 재건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앤더슨 씨는 1973년 2월 7일 숨을 거두었으나 4H 운동은 새마을운동과 결합해 농어촌 환경 개선과 생산기반 시설 정비, 자급기반 확충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의 뜻을 이어갔다. 당시 농어촌에는 네잎 클로버 문양과 함께 4H 표어를 안방에 걸어놓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 4H 운동은 급격한 공업화와 도시화, 농어촌 인구의 감소 등으로 위축돼 지금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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