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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강규형]‘오렌지 보수’에겐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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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강규형]‘오렌지 보수’에겐 미래가 없다

입력 2006-02-06 03:06수정 2009-10-0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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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그들을 ‘날라리’라 불렀다. 훗날 그들을 위한 용어가 탄생했다. 이른바 ‘오렌지족’.

1980년대가 흥미로운 것은 고위 공직자, 집권당 국회의원 등 기득권층의 자제 중 꽤 많은 수가 시대를 고민하며 급진주의 운동에 투신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무감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호화롭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기득권층 출신의 오렌지였든가, 또는 기득권층으로의 편입을 갈망하며 오렌지의 행태를 따라 하는 ‘낑깡족’이었다. 재미있게도 이들 ‘구(舊)오렌지’ 중 거의 대부분이 현재도 한국 사회의 상류층에 남아 있다. 본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경우도 많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1980년대의 소위 ‘진보’는 지금 기준으로 봤을 때 지향점이 잘못 설정됐을 순 있으나 개인과 사회, 국가와 민족, 그리고 세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를 밑에서부터 변화시키는 사회·문화운동에 성공했다. 옛말에 “젊어서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가슴(정열)이 없고 늙어서도 사회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다”고 했던가? 오렌지들은 젊은이로서의 문제의식이 없으니 고민이 있을 수 없고, 고민이 없으니 생각과 정열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그 악순환의 귀착점은 바로 철학의 부재(不在)였다.

다행히 이들 중 일부는 사회에 편입되면서 개과천선하여 생각 있는 ‘한라봉’으로 ‘진화’한 경우도 있다. 젊은 한때의 풍류로 그친다면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잘못된 생활상태와 사고방식이 나이 들어서도 그대로 온존하는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한라봉으로 진화하지 못한 1970, 80년대의 오렌지들이 사회에 나가 기득권을 유지하고 중추적인 자리를 차지하며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중심이고 보수입네” 하니 한국의 보수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사실 이런 부류는 진정한 보수도 아닌 기득권층의 자기 보호에 불과하다.

얼마 전 사석에서 지인들이 “한국에는 왜 ‘헤리티지 재단’이나 ‘존 올린 재단’ 같은 훌륭한 보수주의 싱크탱크와 지원단체가 없으며, 왜 박정희 도서관이나 기념관의 건립이 기금 부족으로 무산될 위기에 있는가”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토론의 잠정적인 결론은 한국의 기득권, 자칭 보수의 많은 수가 ‘생각이 없는 얌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신나게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그런 뜻있는 재단이나 기구를 만들거나 지원할 의지와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철학, 이것을 갖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뇌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젊어서도 그런 과정이 없었고 나이 들어서도 변신의 고통이 없었는데 지금 와서 없던 철학이 갑자기 생기겠는가. 새뮤얼 스마일스가 ‘인격론’에서 얘기했듯이 “고통을 모르는 자, 무엇을 알겠는가”. 그러다 보니 그들은 또래 세대의 일반적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급격히 변한 시대정신도 파악하지 못한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자신들의 안위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이는 게 바로 그들의 초라한 자화상이다.

사실 6·25전쟁 종결 이후 한국의 보수는 권력과 기득권의 보호 속에서 성장했다. 온실 속 화초가 저항력이 약하듯 한국의 보수는 자생력을 갖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오랜 세월 메마른 광야에서 야성적으로 커 온 진보의 끈질긴 생명력 앞에서 너무나 무력했다. 현재 뉴 라이트라고 부르는 새로운 자생적 보수가 주목받으며 진보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그런데 그 뉴 라이트도 기실 많은 부분이 1980년대 진보세력에서 태동(胎動)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구오렌지족이 청장년층을 형성하는 한국의 구보수는 취약하다. 생각 없는 국민에게는 미래가 없다. 마찬가지로 생각 없는 보수에도 미래가 없다. 치열한 자기 혁신을 통해 진보하는 보수, 생각하는 보수, 야성을 가진 보수, 그리고 정열과 따뜻한 가슴을 가진 보수로 거듭나고 사회적 저변이 확대될 때에만 비로소 한국 보수에 미래가 있다. 변화하지 않은 구오렌지족의 모습에선 아쉽게도 그러한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한국의 오렌지들이여, 부디 한라봉으로라도 빨리 진화하시라.

강규형 명지대 교수·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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