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즐겨라”… 북카페는 진화 중

  • 입력 2006년 2월 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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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으로 보이는 연인이 나란히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래를 보니 두 남녀의 발이 족욕기(足浴器)에 나란히 포개져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두 연인이 책을 읽는 동시에 따뜻한 족욕을 즐기는 것도 모자라, 공개적인 스킨십까지 만끽하는 ‘일석삼조’의 현장이었다.

요즘 대학가 북 카페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는 고즈넉한 공간이던 북 카페가 최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족욕실, DVD방, PC방의 기능을 갖춘 ‘하이브리드(Hybrid·혼성)형 북 카페’가 대학가를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1일 밤 9시경 서울 신촌 대학가에 있는 한 북 카페. 2개 층 60여 개 좌석에 빈 자리가 거의 없다. 서가에는 2000여 권이 꽂혀 있는데 인문 사회과학 서적은 별로 없고 건축 패션 여행 과학 분야 전문 잡지, 만화, 소설이 대부분이다. 옆으로 돌아가니 족욕기 5대 앞에서도 독서 삼매경이 연출되고 있다. 위층의 DVD 감상실, 인터넷 PC방도 빈 자리가 없다. 음악은 독서에 어울리는 조용한 음악이 아니라 흥겨운 재즈가 흘러나온다.

손님은 대부분 대학생이고 30대 초중반의 직장인들도 여럿 눈에 띈다. 족욕이 건강에 좋다는 얘길 들은 인근 대학과 학원 등의 외국인 강사들도 자주 온다고 북 카페 정길호(33) 사장은 귀띔했다. 커피 값(5000원)만 내면 시간 제한 없이 모든 시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어 개점 시간인 낮 12시쯤에 들어와 폐점 시간인 자정이 가까워서야 자리를 뜨는 대학생도 꽤 있다고 한다.

5일 밤 서울 신촌 대학가에 있는 북 카페 ‘앤드’. 휴일인데도 많은 젊은이가 족욕기에 발을 담근 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다. 특히 커플끼리 함께 독서와 휴식을 즐기는 손님이 많았다. 김미옥 기자

정 사장은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는데 문화를 놀거리로 즐기길 원하는 젊은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이날 이곳을 찾은 여대생 이수연(21) 씨는 “차 한 잔 마시는 데이트 비용으로 남자친구와 함께 영화 관람에서부터 독서, 족욕까지 즐길 수 있어 일주일에 사흘가량 북 카페를 찾는다”고 말했다.

기존의 차분한 북 카페들과 달리 이렇듯 ‘토털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탈바꿈한 새로운 개념의 북 카페는 2년 전부터 등장했다. 현재 신촌, 홍대앞 등은 물론 제주도 등 지방으로도 퍼지고 있다. 책을 어렵고 따분하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변화된 성향에 맞추기 위해 PC방, DVD방과 같은 ‘방 문화’를 접목함으로써 ‘책과 함께 놀자’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이 북 카페 주인들의 설명이다. 독서가 중요하다고 하니 책을 보긴 보되 쾌적한 환경에서 놀이와 휴식을 함께 누리고 싶다는 젊은층의 바람을 겨냥했다는 것.

그러나 “책을 내세웠을 뿐 사실은 각종 놀이시설을 한데 모아놓은 실내 놀이공원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한편 북 카페에 미술관의 기능을 합친 ‘갤러리형 북 카페’도 등장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문을 연 북 카페 ‘북스(VOOKS)’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술 사진 건축 디자인에 관한 전문 서적을 보면서 전시 중인 그림 조각 사진 등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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