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esign/지금 영국에선]소비자의 생각을 읽어라

  • 입력 2006년 2월 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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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 영국 런던 캠던타운에 있는 론 아라드(55·사진) 씨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저물고 난 뒤였다. 주소만 달랑 들고 어두컴컴한 동네에 다다르니 쓰러져 갈 듯 으스스한 분위기의 건물이 나타났다. 이곳이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인 아라드 씨가 대표로 있는 ‘론 아라드 어소시에이츠’라는 사실이 의아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그는 22세 때 영국으로 이주한 뒤 산업 디자이너, 건축가, 연출가, 무대 미술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독특한 디자인 가구로 유명한 그의 대표작으로는 ‘책벌레(Bookworm)’라는 이름의 책꽂이가 있다.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을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는 이 책꽂이를 통해 그는 ‘테크놀로지의 음유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를 인터뷰한다고 하자 국내외 디자인 관계자들은 “개성이 남다른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인터뷰가) 재미있을 수도, 힘들 수도 있다”고 귀띔해 주기도 했다.

기대 반, 긴장 반의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서자 어둑한 조명의 내부가 긴 통로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책벌레’를 비롯해 의자 여러 개를 겹쳐 쌓을 수 있는 비트라의 ‘톰백’ 의자, 카르텔의 ‘FPE’ 의자, 듀폰의 ‘오 보이드’ 의자 등 그가 디자인한 유명 제품들이 놓여 있었다.

테크놀로지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론 아라드 씨의 대표작 ‘책벌레’.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도 그의 디자인을 통하면 예술적 실용품으로 바뀐다. 사진 제공 론 아라드 어소시에이츠

젊은 일본인 여성 디자이너의 안내를 받고 5분쯤 기다렸을까. 빨간색과 흰색 세로 줄무늬가 있는 펑퍼짐한 바지, 오리엔탈 느낌을 물씬 풍기는 주황색 스카프, 검은색 모자 차림의 음유시인이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론 아라드입니다.”

그에게 대뜸 모자를 쓴 이유를 물었더니 “원칙은 없다. 때에 따라 다르다”란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디자인한 의자들은 그의 패션처럼 일정 원칙이 없어 보인다. 그는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으로 ‘지루함’ ‘원리원칙주의’를 꼽았다. 그래서인지 그가 디자인한 의자들은 때로는 불안정하게 움직이기도 하고, 때로는 과장되게 부풀려진 채 ‘실험’ 정신을 드러낸다.

판타스틱(Fantastic), 플라스틱(Plastic), 일래스틱(Elastic)의 앞 글자를 딴 FPE 의자는 폴리프로필렌과 알루미늄 프레임을 이용해 물결치듯 휘어지게 디자인했다.

그의 세계적 작품인 의자에 앉아 본 뒤 기자는 “편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단답형으로 답하던 그가 말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런 반응은 처음이군요. 하이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내 작품에 대해 ‘미래주의’란 표현을 쓰는 이들이 있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로지 현재에 관심이 있습니다. 다만 움직이는 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우리 인식 속에 숨은 ‘부정적 공간(negative space)’을 양지로 끌어내고 싶을 뿐입니다.”

금속 등을 이용해 물결처럼 만든 론 아라드 씨의 FPE 의자. 사진 제공 론 아라드 어소시에이츠

그는 디자인회사 인력을 20명 내외로 유지한다. 그 이상으로 커지면 스스로 프로젝트를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런던의 ‘배터시 전력발전소’를 고급 호텔 ‘어퍼 월드 호텔’로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호텔은 2008년 완공 예정으로 방마다 수영장이 있다. 아라드 씨는 이곳에 엔터테인먼트와 휴식이 결합된 ‘꿈의 공간’을 디자인할 예정이다.

그는 이스라엘 디자인 뮤지엄과 이탈리아 하이테크 소품 기업인 ‘마지스’의 본부도 디자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은 사람들의 요구(needs)를 철저히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는 아이디어의 연금술사입니다. 그러나 디자인만 홀로 앞장설 수는 없습니다. 디자인은 철저히 소비자의 요구를 따라가야 하며, 그런 이유에서 끊임없이 사람들과 새로운 현상을 관찰해야 합니다.”

아라드 씨는 금속을 현명한 소재라고 부르며 상상력과 기술로 디자인해 긴장 모순 여백의 미를 표현해 왔다. 무생명의 금속에 생명을 불어넣는 그에게 ‘테크놀로지의 음유시인’이란 별명은 어색하지도 과하지도 않았다.

런던=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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