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덜 쓰는 병원 골라서 간다

  • 입력 2006년 2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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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사는 회사원 이모(31) 씨는 지난달 말 유난히 감기에 잘 걸리는 세 살 난 외동딸이 콜록거리며 심하게 몸을 떠는 것을 보고 덜컥 겁이 났다.

이 씨는 딸을 안고 동네 의원을 찾아 나섰다. 그는 항생제가 감기 치료와 무관하고 오히려 내성만 높인다는 언론 보도를 자주 접한 터여서 항생제를 되도록 적게 처방하는 병원을 찾고 싶었다.

▽동네 어느 의원이 항생제 얼마나 쓰는지 알게 돼=그러나 이 씨는 동네에 있는 어떤 소아과나 내과가 항생제를 적게 쓰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급한 마음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소아과를 찾아 딸의 진료를 받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처방받은 약에 얼마나 많은 항생제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 씨는 딸이 감기에 걸릴 때마다 더는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감기 환자들은 동네의 어느 의원이 감기에 항생제를 얼마나 처방하는지 알게 됐다.

전국 병원과 의원의 항생제 처방률 정보를 병·의원 실명과 함께 공개하라는 지난달 5일 법원의 첫 판결이 2일 확정됐기 때문이다.

▽공개 대상에 항생제 처방률 상위 병·의원 포함=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해 10월 ‘2005년도 1분기 급성 상기도감염(감기)에 대한 항생제 처방 실태 평가 결과’를 일부 공개했다.

그러나 당시 공개된 의원 명단 2603곳은 항생제를 적게 처방하는 곳들이어서 항생제 오남용 실태를 파악하기에 미흡한 자료였다.

이번 판결 확정으로 공개되는 정보에는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병·의원들이 포함돼 있다.

판결 확정에 따라 공개되는 정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생제를 많이 처방하는 소아과 내과 이비인후과 등 ‘동네’ 의원 명단이다.

참여연대가 실명 공개를 요구한 대상에는 전국의 종합병원 전문병원과 동네 의원들이 포함돼 있지만 사실상 의료계에서 항생제 오·남용이 가장 심각한 곳은 동네 의원들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종합병원 등 2, 3차 진료기관들은 감기 외에 폐렴 등의 합병증에 걸린 환자들이 찾는 곳이어서 염증 치료를 위해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것이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항생제 처방률이 98% 이상 되는 곳도=소규모 의원이 특별한 합병 증세가 없는 단순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과다 처방하는 관행의 심각성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03년 1분기 항생제 처방률 자료에 따르면 경남 진주시의 한 소아과 의원은 3개월 동안 4375명의 환자 가운데 4358명(처방률 99.61%)에게 항생제를 처방했다. 항생제를 가장 많이 처방하는 10개 의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모두 98%를 넘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감기는 대부분 바이러스가 원인이기 때문에 세균 감염이 심각하게 의심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생제 치료 효과가 없어 항생제 오·남용을 줄여야 하는 대표적 질환”이라고 밝혔다.

▽의사들 우려와 반발=의사들은 판결에 따라 항생제 정보가 공개될 경우 오히려 다른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한 소아과 의원 원장은 “의사들이 소신에 따라 항생제를 써야 할 경우도 있는데 앞으로는 주변을 의식해 선뜻 처방하지 못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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