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무위원 紙上 청문회] 이상수 노동부 장관 내정자

  • 입력 2006년 2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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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李相洙·사진) 노동부 장관 내정자는 1980년대 중반 유명한 ‘노동 변호사’였으며 1988년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주로 노동계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그가 비정규직 문제 등 노사 갈등 사안에서 노동계 편으로 기울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이 내정자는 1985년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 노동법률상담소를 개설한 뒤 본격적으로 노동 변론에 나섰으며 1987년에는 당시 노무현(盧武鉉) 변호사와 함께 대우조선 이석규 씨 사인 규명 작업에 나섰다가 ‘3자 개입’ 등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13대 때 국회의원이 된 뒤에는 ‘노동위 3총사’로 불린 노무현, 이해찬(李海瓚) 의원과 함께 각종 노동쟁의 사건 진상조사에 나서는 등 노동 문제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 과정에서 이 내정자는 반(反)기업 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1989년에 “정권과 재벌의 야합에 의한 노동자 탄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했고, 1990년 국회 노동위원회에서는 “정부가 독점재벌 위주의 경제성장정책을 고집하는 한 공권력에 의한 노동 통제 정책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1996년에는 국회에서 “우리 경제의 저효율 구조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서 비롯됐다”고 말했고, 같은 해 한 칼럼에서는 “노동법 개정과 관련해 더는 재벌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썼다.

그러나 이 내정자는 3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법도 상당히 합리적으로 개정됐고 노동자의 힘도 커졌다”며 “노동계에도 양보할 것은 양보하라고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과거와는 달라진 태도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내정자가 장관이 될 경우 노동계 등으로부터 논리의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강한 압력을 받을 것이고, 이 경우 자칫 노동계 편향으로 기울어질 수 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이 내정자는 또 지난달 2일 장관에 내정된 직후 비정규직 법안 등에 대해 정부안과 배치되는 듯한 발언을 해 비난을 샀던 사실을 의식한 듯 주요 노동 현안에 대해 대체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해 “정부 안이 가장 균형 잡힌 안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에서 논의하는 문제이니만큼 그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이 내정자는 “장관에 정식 임명되면 양대 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를 찾아 인사하며 노사정 대표단회의를 제안할 것”이라고 대화를 강조했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재계 요구에 대해 이 내정자는 “고용이 경직된 곳은 대기업뿐이며 중소기업은 오히려 유연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분리 대응해야 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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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거운 직책, 가벼운 입

이상수 노동부 장관 내정자는 장관 지명 발표가 나자마자 ‘보은 인사’ 논란에 시달렸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측 대선자금 문제로 구속됐으나 특별사면된 데다 지난해 10·26 경기 부천 원미갑 재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하자 다시 장관에 내정되는 등 ‘상상 이상’의 특혜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 내정자도 자신의 장관 지명에 대해 “보은의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장관 지명은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로 옥고를 치른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야당에서는 “대신 감옥 살아줬으니 고맙다는 식의 발상은 ‘범죄 집단’에서나 있는 일이다. 보은 인사라는 말 자체가 여권의 부도덕성을 보여 준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제는 또 있다. 이 내정자는 지난해 원미갑 재선거 출마 때 펴낸 ‘충무경찰서 초대가수’란 저서에서 “보은 인사란 말을 들으며 정부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재선거에 출마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말 바꾸기를 한 셈이다.

이 내정자는 이 저서에서 “여당에서도 책임질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기계적 형평성 때문에 구속됐다. 수백억 원대의 현찰을 차떼기로 받은 것(한나라당을 겨냥한 것)과는 비교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 내정자는 2003년 3월 7일 민주당 사무총장이었을 때 출입기자 오찬 간담회를 자청해 자기 자랑을 하던 끝에 “대선 때 100대 기업을 다 돌았고 당 후원금 120억 원을 모았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총무본부장이었다.

스스로 120억 원을 모금했다는 사람이 한나라당에 비해 모금 액수가 적다며 억울하다는 주장을 하는 셈이다. 남에겐 엄격하고 자신에겐 관대한, ‘도덕성의 이중 잣대’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전까지 민주당이 돼지저금통을 통한 국민성금과 국고보조금 위주로 선거를 치렀다고 ‘거짓 설명’으로 일관했던 데 대한 설명도 없다.

이 내정자의 ‘120억 원 모금’ 발언에 대해 당시 여권에선 “경솔한 자기자랑이 참화를 불렀다”는 얘기가 많았다.

경솔한 언행은 특히 노동부 장관에겐 중대한 결격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장관의 실언도 정부정책으로 오인돼 노동계 등에 즉각적인 파문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내정자는 장관 내정 사실이 발표되자마자 바로 다음 날(1월 3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비정규직 관련 입법과 관련해 “밀어붙이는 식의 행정은 하지 않겠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양보를 얻어내는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이는 비정규직 법안 원칙 처리를 강조해 온 기존의 정부 입장과 배치되는 발언이어서 물의가 일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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