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뒤 NSC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를 제대로 보고했는지 의문이다. 지난해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노 대통령이 돌연 ‘전략적 유연성’ 수용 반대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국정상황실 보고서도 당시 노 대통령이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미 측이 당혹스러워하면서 입장 변경의 배경에 의아해하는 분위기’였다고 지적함으로써 보고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적시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실무선에서 합의된 사안을 대통령이 모르고 엉뚱한 발언을 한 것이라면 이런 국가적 망신이 어디 있나. 부처 간에 손발도 안 맞고 이를 조정, 통합하는 기능도 없는 아마추어 정권임을 널리 알린 셈이다. 이러고서도 자주(自主)를 외치고 “미국에도 할 말은 한다”고 큰소리를 쳤다. “분권적 국정운영을 위해 행정 일반은 국무총리에게 맡기고 외교안보는 직접 챙기겠다”고 한 노 대통령은 그동안 무엇을 챙겼기에 문건파동 같은 일이 벌어지는가.
이번 파문을 둘러싸고 대미(對美) ‘온건 자주파’와 ‘강경 자주파’ 간의 불화설이 무성한 것은 더 한심한 일이다. 청와대와 NSC 등에 광범위하게 포진한 강경파들이 ‘전략적 유연성’ 수용에 제동을 걸고 대미 자주외교를 관철하기 위해 문건들을 유출시켰다는 것인데 사실이라면 개탄할 일이다. 왜곡된 이념과 분파적 이익에 매몰돼 국익과 국가의 정체성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외교안보 정책을 주무르고 있다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없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책임을 물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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