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2년 베트남전 美헬기 첫 추락

  • 입력 2006년 2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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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다다다다….”

베트남전쟁은 헬리콥터 편대의 굉음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 육군은 총상을 입고 정글에 고립된 병사들을 데려오기 위해, 그리고 정글 깊숙한 곳에 전투 병력을 투입하기 위해 헬기를 사용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한 장면에선 미군이 마을 하나를 초토화시키는 동안 헬기의 확성기에서 바그너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물론 상상력의 산물일 테지만. 갑자기 정글 위에 나타나 기관총을 난사하는 미군 헬기는 베트콩에겐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었다.

베트남전쟁은 명실 공히 최초의 ‘헬기 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처음 미군에 헬기가 도입됐고, 6·25전쟁 때 구조 작전에도 투입됐지만 시험 단계에 불과했다. 베트남전쟁에서야 이른바 ‘공중 기동력(air mobility)’이라는 전투 개념이 도입됐다. 수직 이착륙, 후진 비행, 제자리 비행이 가능한 헬기의 탁월한 기동 능력이 인정받게 된 것이다.

베트남전쟁 중 투입된 헬기는 모두 1만1827대. 100여 대의 헬기가 한꺼번에 기동하기도 했다. 헬기가 없었다면 캄보디아와 라오스 국경을 지키는 데는 3배 이상의 미군 병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가장 많이 투입된 기동헬기 ‘UH-1 휴이’는 베트남전쟁의 심벌이 됐다. 미 육군은 나중에 UH-1에 기관총을 달아 공격용으로 활용했고 이를 ‘AH-1 코브라’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베트남전쟁에 투입된 최초의 미군 헬기는 ‘CH-21 쇼니’였다. 굽은 바나나처럼 생겨 ‘나는 바나나(flying banana)’로 불린 CH-21 33대가 1961년 12월 수송함에 실려 남베트남에 도착했고, 주로 남베트남 병력을 전장으로 실어 나르는 임무를 맡았다.

1962년 2월 4일 이 중 한 대가 메콩 삼각주 지역의 홍미라는 마을 근처에서 추락했다. 베트남전쟁 최초의 헬기 추락이었다. CH-21은 속도가 느리고 소총에도 격추되는 취약점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베트콩이 던진 창(槍)에도 추락된다는 소문까지 나돌았고 곧 UH-1로 대체됐다.

‘헬기 전쟁’이 낳은 피해는 적지 않았다. 베트남전쟁 기간에 투입된 헬기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5086대가 파괴됐다. 조종사 2197명과 승무원 2717명이 숨졌다. 베트남전쟁 중 미군 사망자 5만8148명의 8%가 넘는 수치다.

당시 첨단 전투를 주도했던 미군. 하지만 이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베트남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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