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묵향에 가득한 풍류 여백에 그윽한 사랑

  • 입력 2006년 2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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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씨름’. 종이에 수묵담채 27.0×2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527호.
단원 김홍도의 ‘씨름’. 종이에 수묵담채 27.0×2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527호.
◇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2/오주석 지음/236쪽·1만3000원·솔

◇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오주석 지음/365쪽·2만5000원·신구문화사

‘씨름판이 벌어졌다. 누가 이길까. 앞쪽 장사①의 들배지기가 제대로 먹혔으니 앞사람이 승자다. 뒷사람②의 쩔쩔매는 눈매와 깊게 주름잡힌 양미간, 그리고 들린 왼발과 떠오르는 오른발을 보라, 절망적이다…(그림의 오른쪽 위) 씨름을 구경하는 잘생긴 상투잡이③가 저렇게 누워 있는 것을 보면 씨름판은 시작한 지 퍽 오래되었다…다음 선수는 누굴까. 옳거니, (그림의 왼편 위쪽) 갓을 벗어 나란히 겹쳐 놓고 신발을 벗어 놓은 두 장정④이 심상치 않다. 내심 긴장한 듯 무릎을 세워 두 손을 깍지 낀 채 선수들의 장단점을 관찰하고 있다….’

조선시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씨름’을 이렇게도 꼼꼼히 읽어 낼 수 있을까. 흥미롭고 매력적인 옛 그림 읽기가 아닐 수 없다.

해박한 지식과 빼어난 안목으로 옛 그림의 아름다움과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전해 주었던 미술사학자 오주석. 그런 그가 2005년 2월 5일 마흔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 이제 1주기가 되어 간다.

그가 타계하고 얼마 후 강우방(한국미술사) 이화여대 교수, 유봉학(한국사) 한신대 교수 등 고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의 유고를 정리해 책으로 내기 위해서였다. 이 두 권의 책은 그렇게 해서 나왔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글의 여운은 여전하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2’는 독서가에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었던 같은 제목의 1편에 이어 단원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와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金剛全圖)’, 다산 정약용의 ‘매화쌍조도(梅花雙鳥圖)’, 작자 미상인 ‘이채(李采) 초상’ 등 6점의 그림을 다룬다.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음으로 읽어 내려갈 때 옛 그림의 미학과 의미가 드러날 수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글들이다. 평이하면서도 여운이 있는 깔끔한 문체와 내용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만하다.

다산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매화쌍조도-딸에게 준 유배객의 마음’을 읽다 보면 그 애잔한 사연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다산이 전남 강진에서의 유배 생활 13년째 되던 1813년에 그린 것. 위쪽에 매화와 참새 한 쌍이 그려져 있고, 아래엔 한 편의 시와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이 적혀 있다. 사연인 즉 ‘부인이 유배지로 보내온 해진 치마를 오려 딸아이에게 그림을 그려 보낸다’는 내용이다.

저자는 이 그림을 이렇게 읽어 간다. ‘두 마리 새는 한 해 전 시집간 딸의 부부를 상징한다…그러나 새가 너무 작다! 활짝 핀 매화 송이보다 약간 더 크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조그만 새가 있을까. 이것은 아마도 실재한다기보다 자식을 앳되게만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속에나 존재하는 새가 아닐까…13년째 홀몸으로 살림을 꾸려 온 애처로운 아내의 물 바랜 다홍치마 조각…시집간 딸에 대한 그리움…대학자 정약용이 처했던 힘겨운 유배 현실과 그 역경의 와중에서도 결코 잃지 않았던 한 조각 따뜻한 부정(父情)의 온기가 화면 가득 배어난다.’

이 같은 해석은 화가와 그림에 관한 사료, 그림의 내용 등을 치밀하게 분석한 뒤 화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갔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오주석과 함께하는 옛 그림 읽기가 즐거운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김홍도의 ‘선면서원아집도’.
함께 출간된 ‘이인문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는 조선 후기 회화의 걸작 ‘강산무진도’에 관한 최초의 본격 연구서다. 이 그림은 폭 44cm, 길이 856cm의 거대한 두루마리 화폭에 사계절의 대자연과 다양한 인간사(人間事)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은 대작이다. 전문 학술서이긴 하지만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강과 산, 그 강산무진의 세계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오주석 1주기를 맞아 5일 오후 3시 경기 파주시 광탄면 천주교 바다의별 공원묘지에서 추모식이, 6일 오후 6시 반 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사 내 송현클럽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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