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82>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2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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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오래잖아 종리매와 환초 항양 정공 등이 각기 군사를 이끌고 패왕 항우 쪽으로 모여들었다. 가장 멀리 한왕을 뒤쫓았던 종리매가 아는 대로 말했다.

“한왕은 고성 북쪽으로 달아났습니다. 탐마가 알아본 바로는 여기서 20리쯤 되는 곳에 한군 진채가 있는데, 한왕이 그리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뭐? 여기서 20리밖에 안 되는 곳이 한군의 진채라고? 언제 여기 그런 게 있었단 말인가?”

“대왕께서 여기에 매복계(埋伏計)를 펼치는 동안에 한군 한 갈래가 몰래 얽은 것인 듯합니다. 하지만 오늘 싸움에 이리 지게 될 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높고 두꺼운 방벽과 보루까지 갖춘 성곽 같은 진채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의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지난 1년 붙잡혀 있었던 광무산의 진채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금방이라도 한군 진채를 짓밟고 한왕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에워싸고 있는 사이에 초나라는 천천히 줄어들고 말라붙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고단하고 외로운 신세로 오히려 뒤쫓기게 되고 말았다….

“그곳도 광무간(廣武澗)처럼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있고 가파른 산비탈에 의지하였다던가?”

패왕은 일이 그렇게 된 것이 모두 종리매의 탓인 양 못마땅한 얼굴로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종리매가 떨떠름한 얼굴이 되어 들은 대로 전했다.

“벼랑은 끼지 않았고, 진채가 의지한 산비탈도 녹각(鹿角)과 목책(木柵)만 없으면 기마(騎馬)로 쳐올라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자 패왕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유방이 드디어 거기서 죽기로 작정한 모양이로구나. 좋다. 이제부터 전군을 이끌고 그리로 달려가 그것들을 짓밟아 버리자. 여기서 적어도 군사 절반을 잃었을 것이니, 녹각과 목책만 불태워 버리면 여기서보다 쉽게 그것들을 이길 수 있다.”

패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군사들에게 쉴 틈도 주지 않고 한군 진채로 몰아갔다.

패왕이 한군 진채 앞에 이르러 보니 들은 대로 진채에는 녹각과 목책이 빽빽이 둘러쳐져 있었다. 집중과 속도를 바탕으로 적을 쪼개고 갈라 친 뒤, 사나운 장수와 굳센 사졸들로 한 덩어리가 된 초군 부대가 토막 나 쫓기는 적을 하나하나 망치로 때리듯 쳐부수는 게 그때까지 패왕이 이겨 온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마대를 앞세운 돌격전 형태로 시작되는데 녹각과 목책이 그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녹각과 목책을 불살라 버려라!”

패왕이 그렇게 명을 내리자 미리 섶과 장작 따위를 준비해 온 초나라 군사들이 그대로 따랐다. 젖은 밧줄로 묶은 섶단이나 기름 부은 장작에 불을 붙여 한군의 녹각과 목책에 내던졌다. 녹각과 목책만 불타 버리면 바로 기마대를 앞세워 짓밟아 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장량과 진평이 걱정하여 꼼꼼하게 대비한 것이 또한 그런 사태였다. 장량은 목책과 보루 뒤에 궁수들을 숨겨 불붙은 섶단이나 장작을 들고 다가오는 초군에게 화살 비를 퍼부었다. 용하게 한두 군데 불타 버린 녹각 사이로 초군이 뛰어들어도 앞서 들판에서 싸울 때와는 달랐다. 방벽과 보루 뒤에 숨은 한군이 활과 쇠뇌를 쏘아붙이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일시에 뛰쳐나와 맞받아쳤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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