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英전문 번역가 존 휴스턴씨의 한국사랑

  • 입력 2006년 2월 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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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한국은 ‘키즈멧(kismet)’과 같은 존재입니다.”

1일 국제전화를 통해 접한 그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뭐든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고도 했다. ‘kismet’은 ‘운명, 숙명’이라는 뜻. 그러나 그는 “천생연분(天生緣分)이란 뜻”이라며 그 의미를 조금 색다르게 해석했다.

최초의 서울대(중문학과) 학부 외국인 졸업생, 한국 궁궐 전문가, 한국어 번역 강사…. 한영 전문 번역가인 미국인 존 휴스턴 씨의 특이한 이력을 접하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 그의 이력에 최근 또 다른 기록이 더해지게 됐다.

최근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이 한국문화 소개 시리즈의 일환으로 출간한 ‘한국의 궁궐’(김동욱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저·마이클 핀치 역) 영문판 감수를 그가 맡았기 때문. 영문판 제목은 ‘PALACES OF KOREA’. 한국의 궁궐에 관한 휴스턴 씨의 학식은 전문가 수준이다.

“1970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죠. 그때 한국 관광 영어 가이드를 했는데 제대로 된 안내를 하기 위해 한국 관련 책들을 보며 혼자 공부했습니다.”

그 후 그는 한국의 미에 매혹돼 버리고 말았다.

‘한국의 궁궐’영문판.

“창덕궁의 후원에 가 보세요.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웅장하고 제압적인 중국 궁궐과는 다른 따뜻함이 있습니다. ‘한국의 궁궐’은 이런 한국 궁궐의 미와 역사를 사진과 함께 담아 낸 아름다운 책입니다.”

서울대 졸업(1974년) 후 서울에 남아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현 오리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것도 바로 이 같은 ‘한국 사랑’ 때문이다. 서울대에 다니기 전 대만 국립 정즈(政治)대에서도 공부해 중국어에 능통했다. 그는 어학 능력을 살려 카피라이터와 번역가로 활동했다.

하지만 1970, 80년대 이방인으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당시 서대문구 냉천동에서 하숙을 했는데 주인집 노부부는 저를 제사 때에도 초대할 만큼 아들처럼 대해 주셨어요.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미국의 정책이지, 넌 아니다’라는 대학 동기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휴스턴 씨는 최근 호주 멜버른 RMIT대에 둥지를 텄다. 그는 통역 및 번역학과에서 한영 번역 기술을 강의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 깊은 산속 한옥에서 조용히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참, 요즘은 드라마 ‘대장금’과 ‘허준’을 DVD로 보는 재미에 묻혀 살아요. 궁궐 관련 책 작업을 해서인지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합니다….”

그의 ‘한국 예찬’은 끝이 없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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