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8학군’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교육委 문일룡 위원장

  • 입력 2006년 2월 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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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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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고 2학년 때인 1974년 미국으로 이민, 하버드대 졸업, 전통의 윌리엄 & 메리대 법과대학원 졸업, 한국기업을 상대로 한 변호사 생활 11년….

문일룡(49·사진) 변호사는 1995년 이러한 안락한 생활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신문에서 우연히 임명직이던 지역 교육위원을 선거로 뽑는다는 기사를 읽은 직후였다.

그러나 그가 출마한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지역은 수도 워싱턴의 배후 지역답게 고학력 고소득 백인이 주류를 이룬 지역이었다. 한국에선 ‘미국의 8학군 중 하나’로 불리는 지역이다.

민주당 지원을 받은 문 변호사는 선거기간 내내 “17세에 이민 온 뒤 맨주먹으로 노력해 성취를 이뤘다. 좋은 교육의 결과다. 한국인의 교육열을 내 고장 어린이들의 미래교육에 쏟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결과는 ‘뜻밖의 당선’. 버지니아 주 최초로 동양계 선출직 공직자가 탄생한 것이다.

교육위원 자리는 명예직에 가깝다. 연 1만2000∼1만3000달러의 활동비가 나오지만, 주당 30시간 정도는 투자해야 하는 자리다. 그러나 연 21억 달러(약 2조1000억 원)에 이르는 방대한 교육예산의 투자우선순위 결정,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의 학군조정 등의 주요 업무를 맡는다.

문 변호사는 현재 12명의 위원이 호선(互選)하는 1년 임기 위원장을 맡고 있다. 1999년 선거에서 낙선했고, 2003년 재도전한 끝에 당선된 뒤의 일이다.

그를 세 번씩이나 교육위원 선거에 도전하게 만든 동기가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좀 비장했다. “명색이 하버드대를 나왔지만, 교민을 상대로 한 변호사 생활에 안주했다는 것이 어찌 보면 부끄러웠다. 새로 이민 온 후배들에게 편한 길을 가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변호사인가, 정치인인가”를 물었다. 그는 “난 정치인”이라고 답했다. “돈은 변호사로 벌지만, 내 마음은 교육위원장 자리에 가 있다. 변호사 일보다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다른 선출직 도전은? 그는 “기회가 있으면 마다하지 않겠다. 하지만 때를 보아가며 결정하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날 인터뷰는 그의 사무실이 아닌 한 고교 체육관에서 이뤄졌다. 교육위원장다운 ‘장소 선정’이겠다 싶었지만, 그곳은 고교 1학년인 그의 둘째 아들이 농구경기를 하는 곳이었다. 그는 “10여 차례 경기 가운데 한번 빼고는 모두 아들의 경기를 지켜봤다”고 했다. 워싱턴 시내 고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부인의 빈자리를 교육위원장인 아버지가 즐거운 마음으로 채우고 있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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