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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원어민 영어교사 ‘가뭄’]시골서도 영어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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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원어민 영어교사 ‘가뭄’]시골서도 영어 하고 싶어요

입력 2006-02-03 03:06수정 2009-09-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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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1급 정교사 자격연수에 참가한 교사들이 2일 전남 담양군 남면 전남도 교육연수원에서 원어민 영어교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농어촌 지역은 원어민 교사를 구하기 힘들어 학생들이 제대로 수업을 받지 못한다. 사진 제공 전남도 교육청

전북 순창군의 면지역 학교(19곳) 학생들은 1년 내내 원어민 영어 교사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순창군에 원어민 영어 교사는 1명. 재미교포 2세인 그는 지난해 9월부터 군내 25개 초중고교 가운데 읍내의 6개 학교를 돌아다니기에도 바쁘다.

면 지역 학생들은 “우리도 미국인 선생님한테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2, 3년 안에는 어려울 것 같다.

충북 단양군의 7개 중학교는 미국인 데이비드 베이커(54) 씨가 혼자 맡는다. 올해가 3년째로 중학교를 두 개조로 나눠 한 학기씩 가르친다. 학생 처지에서는 원어민에게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1년에 몇 차례 얼굴을 보는 데 그친다.

11개 초등학교 중 단양읍내 3곳을 제외하고는 아예 가지 못한다. 베이커 씨는 1주일에 22시간씩 학교를 돌아다니며 가르치느라 늘 피곤하다. 충북 제천시에 배치된 원어민 교사는 6개월을 참지 못하고 말없이 사라졌다.

▽심화되는 지역 간 영어 격차=전국에 배치된 원어민 영어 교사는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1165명. 절반이 넘는 616명이 서울과 경기에서 근무한다. 11개 시도는 50명이 안 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영어교육 활성화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2010년까지 전국의 2850개 모든 중학교에 원어민 영어 교사를 적어도 1명 이상 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중학교 원어민 영어 교사는 221명.

일선 교육청 관계자들은 “1명을 채용하는 데 연간 3500만∼4500만 원이 필요한데 전액 지방교육재정에서 부담하라는 건 사실상 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북도교육청은 30명인 원어민 교사를 올해 50명으로 늘리려고 했으나 1명분의 비용만 추가됐다.

전주고 김학산 교감은 “서울의 경우 60%의 학생이 10세 이전에 외국인에게서 영어를 배운 경험이 있다고 조사됐지만 농어촌은 사설 학원에서도 원어민을 만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부모의 빈부 격차가 자녀의 영어 실력 차이로 이어지고 영어 실력이 다시 학력과 빈부 격차를 낳는 ‘잉글리시 디바이드(English Divide)’가 지역 간에도 빚어지는 것이다.

▽원어민도 수도권으로 몰려=원어민 교사는 서울 경기 등 수도권이나 제주를 선호한다.

중소 도시 및 농어촌은 주택 등 생활여건이 좋지 않고 문화적 이질감을 많이 느껴 지원자가 적다. 경남북과 충북이 대표적인 기피 지역.

농촌에 배치되는 원어민 교사는 대부분 처음 한국에 와서 사정을 잘 모르는 ‘초짜’가 많다. 이들이 1년 후 같은 지역에서 계약을 연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충북 단양교육청 최재승 장학사는 “수업을 마친 원어민 교사가 즐길 만한 여가시설이 없어 농촌지역 근무를 싫어한다”며 “교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지역과 정부 모두 관심 가져야=최근 경기도와 전남 순천시, 전북 전주시처럼 영어마을을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전남도교육청은 원어민 교사들이 근무를 기피하자 교육부의 배정에 참여하지 않고 해마다 한 번씩 캐나다에 직접 가서 우수 교사를 선발한다.

전북도교육청은 이 지역에 사는 미군 또는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을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자원봉사 형식으로 활용한다. 또 호주 대학의 영어과 대학생 교생실습을 지역에서 하도록 했다.

전북도교육청 김효순 장학사는 “정부가 농촌 교육을 살리는 차원에서 영어교육 소외지역에 원어민 교사를 우선 배치하고 예산을 국고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섬마을 학생도 몇달만에 영어토론 척척”▼

“섬 마을 학생들의 눈망울이 그렇게 초롱초롱할 수 없어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싶은데 수업시간이 너무 짧아요.”

캐나다 출신인 크리스 브라운(34·사진) 씨는 전남에서 4년째 영어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2002년 8월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고흥군 고흥읍 고흥여중에서 3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8월 무안군 일로읍 무안중으로 자리를 옮겼다.

1주일에 9시간을 가르친다. 한국인 교사가 수업하는 동안 일대일로 대화하며 학생의 발음을 고쳐 준다. 퍼즐 게임 등을 하고 방과 후 교육활동에도 참여한다.

브라운 씨는 매주 수요일 출장을 간다. 목포항에서 배로 10분 거리인 압해도 내 압해중을 찾아가 영어를 가르친다.

그는 “섬 지역 아이들이라고 해서 육지 학생에 비해 영어 실력이 크게 뒤지지 않는다”며 “섬에서 외국인을 보기 힘든 때문인지 갈 때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며 웃었다.

1주일에 6시간은 무안지역 8개 중고교 영어교사 20여 명을 모아 놓고 워크숍을 갖는다. 수업 방법에 대해 영어로 토론하고 역할극을 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압해중 영어교사인 김권일(30) 씨는 “아이들을 만나면 브라운 씨가 먼저 ‘헬로’ 하고 인사하고 점심 때 ‘고기와 채소를 좀 달라’며 애교스럽게 반찬 투정을 할 정도로 스스럼없이 지낸다”고 말했다.

연봉은 3000만 원이고 출장비와 교통비는 별도. 전남도교육청이 20평짜리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줬다.

그는 “미지의 땅에서 교사의 꿈을 펼쳐보고 싶어 한국에 왔는데 전남이 서울이나 경기도에 비해 낙후된 곳이지만 공기가 깨끗하고 인정이 많다”고 말했다.

목포=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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