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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교수 “사찰에 어린 사연들이 한국 고대소설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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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교수 “사찰에 어린 사연들이 한국 고대소설로 발전”

입력 2006-02-03 03:05수정 2009-09-3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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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연 기자

“조선시대 폐사(廢寺) 설화를 읽어 보면 빈대가 들끓어 절이 망했다는 이야기가 거의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왜 그럴까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가 전국 방방곡곡의 사찰에 어린 사연이 한국 고대소설의 원형이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김승호(50·국문학·사진) 동국대 교수는 우리나라 절마다 간직돼 있는 설화를 수집해 왔다. 사찰연기설화(寺刹緣起說話)라고 불리는 이 이야기들은 길게는 2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찰연기설화의 보고는 ‘삼국유사’다. 300여 편이나 되는 기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광수의 소설 ‘꿈’의 원작인 조신설화는 정토사의 연기설화이고, 탑돌이를 하다가 호랑이 처녀와 정을 나눴다는 김현의 사랑 이야기는 호원사의 연기설화다.

김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삼국유사의 기록뿐 아니라 각종 문헌과 각 사찰에 전해 오는 탑비와 기록문, 구비 전승 설화를 수집했다. 최근 그가 펴낸 ‘한국사찰연기설화의 연구’(동국대출판부)는 그 성과물이다.

옛 사찰일수록 자신의 기원이 오래됐음을 과시하기 위해 유명한 고승 대덕을 동원한다. 예를 들어 절의 창건자가 의상대사 또는 원효대사라고 내세우는 사찰이 각각 70여 개에 이른다.

“재미있는 점은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사찰은 유명 사찰이 많은 데 비해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절은 깊은 산속의 작은 암자가 많다는 거죠. 아마도 의상대사가 제자들을 키워 내는 데 상대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사찰 창건 설화들은 대개 모방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대부분 일종의 원형이 존재한다. 아무리 뛰어난 고승이라도 절터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다가 신비한 존재의 도움을 받는다거나 창건일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는 이야기들이 그렇다.

물론 독창적인 이야기도 많다. 금강산 유점사는 창건 시기를 신라 2대 남해왕 원년으로 못 박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신라에 불교가 전해지기 400여 년 전이다. 전남 곡성 관음사 창건 설화는 원홍장이라는 여인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중국에 팔려갔다가 황후가 돼 관음사 창건의 주역이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락없는 ‘심청전’의 원형이다.

폐사 설화에는 주지가 타락하면서 절에 빈대가 들끓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김 교수가 찾아낸 것만도 70여 편에 달한다.

“조선 숙종 때 정시한이 전국 사찰을 유람하고 쓴 ‘산중일기’를 찾아보면 옛날 사찰에는 돗자리를 많이 깔아서 원래 빈대가 들끓었습니다. 여기에 일반 민중의 눈에 무위도식하는 존재로 비친 승려들에 대한 반감이 작용하면서 빈대의 이미지가 확장된 것이지요.”

김 교수는 “사찰연기설화는 상상력과 허구성이 풍부해 우리 문학의 기원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사찰마다 관련 기록을 신줏단지 모시듯 감춰 둘 것이 아니라 널리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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