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체 부설 충북 양백상고 4일 ‘마지막 졸업식’

  • 입력 2006년 2월 2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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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공들은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다. 고향의 부모님과 동생에게 생활비를 보내려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어린 여공들이 학업의 꿈을 키웠던 산업체 부설 양백상고가 4일 졸업식을 마치면 문을 닫는다. 사진 제공 양백상고
여공들은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다. 고향의 부모님과 동생에게 생활비를 보내려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어린 여공들이 학업의 꿈을 키웠던 산업체 부설 양백상고가 4일 졸업식을 마치면 문을 닫는다. 사진 제공 양백상고
어린 여공들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방직기계 사이를 돌며 8시간 일한 뒤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몸이 피곤해 선생님 말씀이 ‘자장가’처럼 들릴 때도 있었지만 ‘배울 수 있다’는 행복감에 눈망울은 초롱초롱 빛났다.

휴일 없이 한 달을 일하고 받은 월급은 10만 원 남짓. 적금을 붓고 동생들 학비와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고 난 뒤 손에 쥐는 돈은 1만 원이 채 안 됐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버텼다.

이처럼 1970년대 가정형편이 어려워 정식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근로청소년들이 뒤늦게 학업의 꿈을 키우던 산업체 부설학교가 사라지고 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양백상고. 마지막 학생 130명이 4일 졸업한다.

이 학교는 1977년 12학급 규모의 대농부설여중으로 출발했다. 그 뒤 대농부설여자실업고(1978년) 양백여상(1981년) 양백상고(2000년)로 이름을 바꿨다.

입학생 대부분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이 학교를 택했다.

4회 졸업생인 장길남(張吉男·40·여·보험설계사) 총동문회장은 “비슷한 또래에서부터 열 살 차이가 나는 언니까지 같이 학교를 다녔다”고 회고했다. 대부분 시골이나 섬마을 출신이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마치고 나면 온몸이 녹초가 됐지만 모두들 이를 악물고 교실로 향했다. 밀려드는 졸음은 그야말로 ‘수마(睡魔)’였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이겨냈다.

오전 8시에 출근하는 선생님들도 배움에 목마른 제자들을 위해 오후 8시까지 근무했다. 1980년부터 근무한 이성준(李成濬) 교장은 “힘든 공장 일을 하면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마음으로 가득 찼던 학생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백상고는 ‘1인 3통장’ 갖기 운동을 벌여 모든 학생이 졸업 때 목돈을 마련해 사회에 진출했다.

그러나 학교를 설립, 지원해온 대농의 경영 악화와 지원자 감소로 지난해 말 폐교가 결정됐다. 전국의 다른 산업체 부설학교도 사정은 비슷하다. 1980년대까지 전국에 40여 개나 됐던 산업체 부설학교는 2000년대에 10여 개로 줄었고 결국 부산의 시온실업고만 남게 됐다.

장 씨는 “어머니의 가슴처럼 따뜻하고 훈훈한 모습으로 어려울 때마다 지켜주던 모교가 사라져 아쉽지만 언제나 힘이 되었던 ‘마음의 고향’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 교육복지정책과 이우관(李雨官) 사무관은 “산업체 부설학교가 사라지는 것은 우리 교육의 질(質)이 나아졌다는 방증”이라며 “산업 역군이었던 ‘어린 여공들’이 우리 경제에 기여한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전국 시도별 산업체부설학교 및 산업체 특별학급 현황(2005년 12월 말 기준)
시 도학교(학급명)학급수
서울서울공업고(특별학급)3
부산시온실업고부설학교3
광주광주공고(특별학급)9
경기의정부공고(〃)2
안양공고(〃)1
서해고(〃)3
수원공고(〃)4
삼일공고(〃)3
충북충북인터넷고(〃)4
충주여상고(〃)1
전북전주여자상업고(〃)6
원광정보예술고(〃)3
덕암정보고(〃)3
전남신북전자공업고(〃)5
경북구미전자공고(〃)5
구미정보여고(〃)7
진량고(〃)4
총계

66
자료: 교육인적자원부
대구 인천 대전 울산 강원 충남 경남 제주는 산업체 부설학교 및 산업체 특별학급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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