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시와 김정일 사이에 낀 盧대통령

  • 입력 2006년 2월 2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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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어제 신년 국정연설에서 ‘폭정의 종식’과 ‘자유의 확산’이 미 정부의 기본 정책임을 거듭 밝혔다. 그는 시리아 미얀마 짐바브웨 북한 이란을 꼽으면서 “이들 독재국가가 테러리스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대량살상무기의 보유를 추구하기 때문에, 폭정을 종식시키고 자유민주주의를 심어 줘야만 세계 평화와 미국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연설은 미국의 대북(對北) 압박정책이 올해도 계속 되고, 이 때문에 한미 정부 간 갈등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을 낳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신년 기자회견에서 “미 정부가 북한을 압박하고, 북한의 붕괴를 바라는 듯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 하면 한미 간 마찰이 일 것”이라고 말했다.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이른바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의 외교정책 결정에 있어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부시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새삼 실감하게 된다. 북한 핵 문제의 경우도, 대화와 타협에 비중을 두는 국무부 일선 외교라인의 접근법이 막판에 번번이 통하지 않았던 까닭은 네오콘의 반대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반(反)인권 및 달러 위조 등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북의 변화와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요구하는 자세를 분명히 보여야 한다. 그런 원칙 위에서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설득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북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미국에는 “할 말은 하겠다”거나, 자주(自主)와 민족공조만 앞세우는 식으로는 6자회담의 진전도, 한미동맹의 순항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 정권 출범 후 노 대통령부터 미국과는 각을 세우고 북한은 끌어안기에 바빴다. 그러나 정부는 내심 원하지 않았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결국 수용하고, 북한을 압박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이러니까 여권(與圈)에서조차 “명분도 실리(實利)도 다 잃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대미(對美)외교에서 허풍은 그만 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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