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금동근]다보스포럼에 한국은 없었다

  • 입력 2006년 2월 2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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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동쪽 끝에 있는 다보스는 해발 2000m의 작은 도시다.

도시의 끝에서 끝까지 차로 달리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규모로만 보면 도시라기보다는 산골 마을이라고 하는 게 적당할지도 모른다.

이 작은 도시에 매년 정초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현직 총리, 전직 대통령에 세계의 부호와 할리우드 톱스타까지. 세계경제포럼(WEF)이 개최하는 연례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영하 10도 이하의 추운 날씨에다 특별한 구경거리도 없는 곳에 유명 인사들을 꾸준히 끌어들이는 것을 보면 WEF의 수완이 참으로 탁월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마디로 참가자들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놓는 능력이다. 연회비 3만 스위스프랑(약 2250만 원)에 참가비 2만 스위스프랑(약 1500만 원)까지 내면서 굳이 이 산골 마을로 오는 참가자들로 하여금 본전 생각이 나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다.

지난달 25일부터 5일간 열린 올해 포럼에서 WEF가 제시한 주 메뉴는 중국과 인도였다. 흥행은 물론 대성공. 올해 참가자는 지난해보다 늘어난 2400여 명. 세계 10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절반 이상이 참가했다.

중국과 인도를 주제로 한 토론장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주변에는 중국과 인도의 정재계 인사를 만나려는 비즈니스맨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중국과 인도 경제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앞 다퉈 내놓았다.

“미국과 유럽이 우세하던 시대는 끝났다. 우리는 세계의 부(富)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빠른 속도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마틴 소렐 영국 WPP 회장)

“중국은 이제 세계 경제의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

“인도 경제는 2050년까지 현재의 50배가량 성장할 것이다.”(골드만삭스 보고서)

참가자들은 “세계 경제는 이제 멀티 엔진을 장착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에 대해선 거품 경제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과거 같으면 미국의 경제 전망에 일희일비하던 세계의 경제인들이 ‘멀티 엔진’을 장착한 뒤로는 미국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잖아도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중국과 인도의 대표단은 이런 전문가들의 평가에 한껏 고무됐다. 중국 대표단은 “성장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향후 5개년 계획에선 성장률 목표를 8%로 낮춰 잡았다”고 밝혔다.

인도는 올해 자국에 쏠린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장관 3명에 CEO 41명을 포함한 150여 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하고 거금을 투자해 다보스를 인도 홍보장으로 바꿔 버렸다. 지난달 27일 밤 열린 ‘인도의 밤’ 행사에는 500명이 다녀갔다. 10년 전 인도가 처음 이런 행사를 마련했을 때 고작 40명이 방문한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눈발이 흩날리는 다보스의 밤거리를 걷다 보니 인도의 밤 행사가 열리는 카페가 눈에 띄었다. 재즈 공연을 배경으로 금발의 서양인과 까만 머리의 인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북적거렸다. 괜스레 ‘한국’이 떠올랐다.

세계는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한국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포럼에 참석한 이명박 서울시장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세계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인도가 언제 이렇게까지 부상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세계는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아직 내부 문제에만 얽매여 있는 건지…. 정부가 대국민 홍보에만 치중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도 경제 규모에 걸맞은 대외 홍보를 해야 합니다.”

금동근 파리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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