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增稅에 앞서 해야 할 일

  • 입력 2006년 2월 2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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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이라는 명분 아래 세수(稅收)를 늘릴 방안을 짜내느라 여념이 없다. 당장 손쉬운 증세(增稅) 방안 찾기에 매달리느라 체계를 갖춘 ‘중장기 세제 개편 방안’을 예정대로 이달 중 내놓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러다 보니 최근 정부의 접근 방식이 무원칙하다는 비난이 따른다. 과거 정부는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인구를 가급적 줄여 나라살림의 무임승차를 억제한다는 등 큰 원칙을 밝힌 바 있다. 현 정부는 이보다는 세수 총액과 ‘부자에게 세금 더 물리기’에만 신경 쓰는 인상이다.

증세라면 근로소득세를 덜 깎아 주는 방안을 먼저 떠올리게 돼 있다. 봉급생활자는 조세 저항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재산세나 자동차세 등과 달리 근로소득세는 임금에서 먼저 떼니까 어느 정도 올려도 반발이 덜하다. 감면 폐지 이유를 둘러대기도 쉽다.

이번에 재정경제부가 5000억 원의 세금을 더 걷기 위해 1, 2인 가구에 대한 추가공제 폐지 방안을 검토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세금을 더 물릴 500만 명에 수백만 명의 맞벌이 부부가 포함된 것이 ‘지뢰’였다.

김용민 재경부 세제실장은 추가공제 폐지 이유로 “부양가족이 적을수록 1인당 공제액이 많아져 출산 장려 정책에 역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여성의 사회 활동을 지원한다던 정부가 증세의 첫 타깃을 맞벌이 부부에게 맞춘 꼴이 됐다. 당연히 거센 반발이 뒤따랐다.

이런 소동을 피하려면 국내외 경제 변화에 맞춘 세제 개편을 함께 추진했어야 했다. 역대 정부가 공통적으로 밝혀 온 소득 간 형평 과세, 비과세 및 감면 축소, 간접세보다 직접세 위주, 거래세 대신 보유세 강화 등 원칙을 점검하고 재천명하는 게 우선이었다.

추가공제 폐지를 내세우기에 앞서 국민에게 ‘감면 축소가 옳은 방향’이라고 자세히 설명했어야 맞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세금을 더 내게 될 맞벌이 부부에겐 다른 혜택을 고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세금에 대한 국민의 가장 큰 불만은 늘 똑같다. ‘나보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은 나보다 덜 낸다’는 것이다. 봉급생활자의 표적이 되는 전문직 종사자도 “같은 업종에서는 나는 잘 못 버는 편”이라고 말하기 일쑤다.

국민 불만과 불신을 줄이고 공평 과세에 접근하기 위해선 소득 파악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저소득 봉급생활자에게서 세금을 더 떼어 소득을 속이는 엉터리 영세민을 돕자는 것이냐”는 반발도 줄일 수 있다.

정확한 소득 통계가 있어야 누진율을 어떻게 할지, 감면은 얼마나 해 줄지를 제대로 검토할 수 있다. 국민의 소득은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국민 부담의 기초이기도 하다. 소득 실태를 모르고는 증세 또는 세제 개편이나 연금 개혁에 대해 다수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소득 파악엔 최소한 몇 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영업자 소득 파악에 효자노릇을 한 신용카드나 시행한 지 1년이 된 현금영수증에 맞먹는 효율적인 수단도 개발돼야 한다.

세제 개편 방향 설정, 소득 파악 인프라 구축 방안 없이 곧바로 증세 논의로 점프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세금 실험’이 너무 많아 혼란이 우려된다. 우선순위 설정과 속도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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