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大 ‘학생 서약’ 논란

  • 입력 2006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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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강의에 빠지지 않겠으며 과제를 꼬박꼬박 제출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요구한다면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영국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옥스퍼드대(사진)가 올가을 새 학기부터 이런 서약서를 받는다고 더 타임스가 31일 보도했다. 서약서에는 법적인 구속력도 포함돼 이를 어기는 학생들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서약서의 구체 항목=총론 격으로 지도교수와 강사 등 학교가 학생을 가르치도록 권한을 부여한 교수진이 제시한 학업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세부적으로 필기 형식의 과제 완수, 수업과 세미나 참석, 학교의 각종 시험 응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최저 교육량은 제시하지 않았다. 전공이 다양해 일률적인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학생들이 서약서의 특정 항목을 어기면 어떤 불이익을 받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수업료만 내면 학업 태도와는 상관없이 학교로부터 똑같은 서비스를 받는다는 고정관념이 바뀌는 분위기라고 더 타임스는 지적했다.

영국에서 학생들에게 서약서 제출을 요구하기는 옥스퍼드대가 처음이다. 더 타임스는 다른 대학들도 뒤따를 것이 분명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옥스퍼드대와 쌍벽을 이루는 케임브리지대는 채택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서약서 요구 배경=대학과 학생 간의 각박해진 관계가 주원인으로 꼽힌다. 2002년 울버햄프턴대의 한 학생은 강의실이 학생들로 미어터지고 교수들이 내준 과제에 틀린 문법이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양측은 결국 3만 파운드(약 5000만 원)에 합의했다.

옥스퍼드대는 올해부터 연간 수업료를 3000파운드(약 500만 원)로 올릴 계획. 이에 따라 학생들이 비싸진 수업료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라며 불만과 이의를 더 활발하게(?) 제기할 가능성에 대비해 서약서라는 방어선을 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대학과 학생 사이가 ‘상호 존중’이라는 50년 전의 신사협정에서 사업상의 ‘갑과 을’의 관계로 바뀐 점도 주요한 요인이다. 옥스퍼드대의 한 관계자는 “서약서에 학생들의 의무를 명기해 놓으면 대학이 학생들을 다루기가 더 쉽다”고 말했다.

옥스퍼드대 학생들은 수세에 몰린 듯한 분위기다. 이 학교의 에마 노리스 학생자치회 회장은 “학교가 과거와 똑같은 상태로 있을 수는 없겠지만 학생들과 먼저 상의했어야 했다”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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