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출근길을 잡아라” 양보 없는 입심대결

  • 입력 2006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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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전쟁을 치르는 심정입니다.”

평화방송 라디오의 아침 시사프로그램 ‘열린 세상 오늘! 장성민입니다’(오전 8∼9시)를 연출하는 오동선 PD는 비슷한 시간대에 방영되는 다른 방송국의 프로그램들과 경쟁하느라 피가 마른다. 매일 주요 인사들의 인터뷰를 생방송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어떤 인사를 섭외하느냐에 따라 매일 매일의 승패가 갈라진다. 라디오 PD들은 아침 시사프로그램을 맡는 것을 ‘유배지 간다’고 표현할 정도로 고된 작업이다.

▽가열되는 출근길 시사프로 경쟁=2000년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오전 6시 15분∼8시)이 시작된 이래 아침 출근시간대의 청취자를 잡기 위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이 춘추전국 시대를 맞고 있다.

KBS ‘안녕하십니까 김인영입니다’(오전 6시 25분∼7시 55분), SBS ‘라디오 전망대 진중권입니다’(오전 6시 5분∼8시), 평화방송 ‘열린 세상 오늘…’, 불교방송 ‘고은기의 아침저널’(오전 7시 5분∼8시 55분), 원음방송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오전 7시∼8시 반) 등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방송 직후 인터뷰 전문을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올린다. 그러면 인터넷 언론들이 이를 인용해 보도한다. 라디오와 인터넷의 결합 현상이 나타나면서 ‘라디오 저널리즘’이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양상이다.

▽섭외의 고충=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작진의 섭외 전쟁도 치열하다. 오 PD는 “우리가 섭외하지 못한 주요 인물을 다른 방송이 인터뷰하면 기자가 ‘특종’을 빼앗긴 것처럼 뼈아프다”고 말했다.

하루에 3명 안팎의 손님을 섭외하기 위해 보통 전화를 30군데는 해야 한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화제의 인물은 겹치기 출연이 예사다. 최근 사학법과 관련해 여야 합의를 이끌어낸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들 방송 대부분에 출연했다.

31일 ‘손석희의…’에 출연한 이 원내대표는 손 아나운서가 여야 합의문에 사학법 개정이라는 명시적 표현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여야 합의의 실효성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자 “트집을 잡으면 정치를 못 한다”며 “주위에서 자꾸 여야 사이에 틈을 벌리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SBS ‘라디오 전망대…’의 경우 한나라당과 보수 계열의 일부 인사는 진행자인 진중권 씨가 평론가로서 보여 온 강한 이념적 성향을 이유로 출연을 꺼린다.

‘라디오 전망대…’의 이영일 PD는 “진 씨가 평론가로선 진보적이지만 방송에선 색깔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데도 일단 이름만 듣고 거절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토로했다.

노무현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열린 세상 오늘…’은 ‘노사모’나 일부 열린우리당 인사를 섭외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한다.

종교방송은 폭넓은 종교계 인맥을 가동한다. 최근 황우석 서울대 교수 사태의 한 당사자인 안규리 교수가 평화방송 ‘열린 세상 오늘…’에 자신의 심경을 담은 편지를 보내 화제가 됐는데 중간에서 연결해준 사람이 가톨릭 신자인 안 교수와 친한 신부였다는 것.

▽라디오 저널리즘의 부활?=방송계에선 정치인들이 라디오 인터뷰를 선호하는 이유를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가장 편리한 매체’이기 때문으로 진단한다. 생방송인데다 전화로 연결되므로 시간도 많이 들지 않는다는 것. 또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공무원들의 홍보를 독려함에 따라 고위 공무원들이 상대적으로 출연기회가 많은 라디오 시사프로 출연에 적극적이라는 것.

‘손석희의…’의 김도인 PD는 “라디오는 TV처럼 많은 준비가 필요 없이 전화 한 통화로 해결하는 간편함과 신속함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손석희의…’는 MBC의 지난해 말 자체 청취율 조사에서 7.9%를 기록해 MBC의 전체 라디오 프로그램 중 7위를 기록했다.

아침 출근 시간대에 주로 차안에서 듣는 라디오는 다른 매체보다 청취자의 집중력이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러나 프로그램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자칫 센세이셔널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성동규(신문방송학과) 중앙대 교수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들이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자극적이거나 흥미 위주의 발언을 유도하는 경우가 있다”며 “지상파 방송답게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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