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비상경영’

  • 입력 2006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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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며칠 전 비상경영 체제 돌입을 선언했다. 정몽구 회장은 ‘위기관리(Risk Management)’를 전담할 경영전략추진실을 신설했다. 부회장급(級)의 리스크담당책임자(CRO)도 임명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의 매출(21조6950억 원)을 올린 포스코의 이구택 회장도 틈날 때마다 위기의식을 불어넣는다. 속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삼성 LG SK 롯데 한화 한진 금호아시아나 KT 등 다른 대기업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연초부터 산업계에 불어 닥친 위기감은 최근 국내 기업들의 경영 성과를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이다. 특히 수출에서의 선전(善戰)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상으로 눈부셨다.

지난해 수출증가율은 12.2%로 3년 연속 두 자릿수를 이어갔다. 1990년대 중반의 반도체 호황기보다 나았고 국제유가 하락, 낮은 금리, 달러 약세-엔화 강세가 나타난 1980년대 후반의 3저(低) 호황에 버금간다. 세계 경제 호황과 수출 호조 속에서도 3년간 단 한번도 5%대 성장도 못 하고 소득증가율은 이보다 훨씬 낮을 만큼 한국 경제의 종합성적표는 나빴지만 그 책임을 기업에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얼어붙었던 국내 소비가 살아나는 조짐이 보인다. 정부도 올해는 확실히 더 나아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은 왜 이처럼 비상이 걸렸을까.

우선 국제유가 및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미국 달러화 및 일본 엔화에 대한 우리 돈의 가치가 함께 오르는 등 경영 환경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이미 배럴당 60달러를 넘어섰다. 달러에 대한 원화 강세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엔화에 대해서도 우리 돈 가치가 빠른 속도로 치솟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엔화와 비교해 원화가 약세일 때 잘나갔고 반대로 강세로 돌아서면 어려움을 겪은 적이 많다.

국내 부문도 짚어 볼 부분이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해외 변수가 나빠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수 회복은 경제 안팎의 분위기에 따라 한순간에 다시 급랭(急冷)하는 ‘인디언 여름(Indian Summer)’이 될 수 있어 섣불리 낙관할 수 없다”고 했다. 인디언 여름이란 미국 북부와 캐나다에서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반짝 나타나는 화창한 날씨로 이 다음에는 다시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다.

불행히도 지난 3년간의 경험을 통해 현실 경제를 다루는 정부 능력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져 있다. 의원내각제 국가라면 정권이 흔들렸을 정도로 경제가 죽을 쑤고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데도 진단과 해법에서 마이동풍(馬耳東風)을 고수해 온 ‘힘센 분’들의 행태가 달라지길 기대하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민간기업은 시장경제의 핵심 주체다. 더구나 정부에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더 중요하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기업까지 비틀거리면 그 후유증이 어디까지 미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전시(戰時)체제’에 들어간 기업 임직원들의 하루하루는 피를 말린다.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좀 더 따스해졌으면 좋겠다. 때론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공과(功過)와 득실(得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야 한다. 기업들의 이번 위기관리가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길 진심으로 바란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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