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천생연분

  • 입력 2005년 11월 3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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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TV의 낱말 맞히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할아버지에게 사회자가 던진 단어는 ‘천생연분(天生緣分)’. 여러 설명을 했지만 할머니가 이 말을 떠올리지 못하자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하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손가락 넷을 펴 네 글자임을 암시했다. 그제서야 할머니가 자신 있게 답했다. “평생 웬수(원수).”

▷우리 선조들은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 것을 하늘의 뜻으로 여겨 천정배필(天定配匹)이라고 했고, 오순도순 잘 사는 사이를 천생연분이라 했다. 당시에는 이혼이 거의 없었다. 하늘이 맺어 준 짝과 갈라서는 것은 하늘에 대한 거역이라는 생각도 작용했을 법하다. 조선시대 최고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이혼 조항이 없는 것을 천생연분 사상과 연결해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서양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아내란 청년에겐 연인이고, 중년에겐 친구이며, 노인에겐 간호사다.” 그 역(逆)도 성립한다. 거리나 여행지에서 다정하게 걸어가는 노부부를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결혼식장에 나란히 선 초짜 부부치고 자신의 배우자를 천생연분이라 생각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갈라서는 부부가 많은 게 현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3만9365쌍이 이혼한 우리나라다.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은 이해찬 국무총리에 대해 “(그와 나는) 천생연분이고 (나는) 참 행복한 대통령”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대통령급 총리’의 든든한 배경을 알 것 같다. 이 총리는 지금 전세 비행기를 타고 중동을 순방 중이다. 이날 노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 국력은 세종 때 다음으로 융성한 세대”라고도 했다. 이 총리가 지난달 독일을 방문했을 때 교포들 앞에서 “나라가 이미 반석 위에 있다”고 한 말과 앞뒤가 척척 맞는다. 천생연분인 대통령과 총리의 태평성대(太平聖代)에 수많은 국민은 세금, 실업, 파산, 그리고 가족 붕괴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이들 국민과 대통령은 천생연분이 아닌가 보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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