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차수]대통령과 누리꾼

  • 입력 2005년 11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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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적 공포가 형성된 것이다. 이 공포는 이후에도 많은 기자로 하여금 취재와 보도에 주눅 들게 하는 금기로 작용할지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줄기세포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라는 글에서 언론 상황을 걱정했다. 필자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항의 수준을 넘어 광고에까지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언론사의 존립 기반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글을 읽고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가장 큰 의문은 노 대통령이 왜 갑자기 누리꾼들의 집단적 움직임을 문제 삼고 나섰느냐는 점이다. 반미 촛불시위 주도 등 누리꾼들의 집단행동이 자주 있었지만 노 대통령은 누리꾼들을 두둔해 왔다.

또 친노(親盧) 누리꾼들이 좋아하는 오마이뉴스나 서프라이즈를 통해 누리꾼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보여 준 누리꾼의 성원과 열망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거나 “누리꾼들이 든든한 후원자요 버팀목이었다”고 치켜세웠다.

반면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0월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내린 후 누리꾼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지만 노 대통령은 못 본 체했다. 헌법기관이 위기에 빠졌는데도 침묵하며 헌재에 대한 비난 여론을 행정도시 건설 당위성의 근거로 연결시켰다.

주요 신문이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누리꾼들에게 줄기차게 공격을 받을 때도 대통령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기숙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비판 신문에 기고나 인터뷰를 하지 못하도록 공무원들을 단속했다.

한 공무원은 “주요 신문에 대한 노 대통령의 적개심을 확인하고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고위 공무원들과의 대화에서 “(주요 신문은)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끈질기게 방해했다. 그런 적들에게 (광고나 기고 등을 통해) 무기를 쥐여 줘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번에 관용과 견제 균형을 강조한 맥락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현 정부 출범 후 기득권층이 공격을 받을 때 주류세력 교체 필요성을 언급하는 등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노 대통령이 관용을 늘 자기편에만 적용하려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누리꾼들의 PD수첩 비판을 ‘사회적 공포’라고 규정한 노 대통령의 언급이 누리꾼들을 친노 반노로 편 가르기 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PD수첩 광고 철회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발언이 광고주들에게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런 우려는 누리꾼들의 댓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주요 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수많은 댓글의 대부분은 노 대통령의 이중적인 잣대를 비난하는 내용이다. 누리꾼들도 이제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 신문의 비판은 수용하지 않으면서 용서와 관용을 말할 수 있나.” “MBC를 두둔하기 위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댓글에는 그대로 옮기기 민망할 정도의 막말이 많다. 관용과 비판 수용에 대한 노 대통령의 무원칙이 부른 자업자득이다.

김차수 문화부장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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