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2004년 김춘수 시인 별세

  • 입력 2005년 11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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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호이징가(1872∼1945)는 모든 형태의 문화는 유희 형식을 가지며 유희정신이 없을 때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유희는 즐거움 그 자체이지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김춘수(金春洙·1922∼2004) 시인의 시에 대한 입장도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 그는 시는 유희처럼 그 자체로서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시가 목적을 가지거나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쓰일 때 이미 그것은 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철저한 순수시인이었다.

‘꽃이여, 네가 입김으로/대낮에 불을 밝히면/환히 금빛으로 열리는 가장자리/빛깔이며 향기며/화분(花紛)이며…나비며 나비며/축제의 날은 그러나/먼 추억으로서만 온다.’(‘꽃의 소묘’ 중에서)

그는 평생 인간과 인간사가 배제된, 시 그 자체를 위한 시를 써 왔다. 언어의 굴레조차도 벗어버리고 싶어했다. 의미와 고정관념 상투성에서 벗어나 대상의 본질 그 자체에 도달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바로 일련의 꽃 시리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그의 꽃 시리즈는 가장 애송되는 시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 철학적 의미마저 담고 있는 난해한 시가 가장 보편적인 애송시가 되어 있는 역설-그것은 그의 삶 그 자체와 닮았다.

대학에서 김 시인에게서 배운 사람들은 그가 학생들이 학점에 연연하는 것에 대해 자주 핀잔을 주었다고 회상한다. 그 나이의 젊은이라면 삶에 대해 방황도 하고 존재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도 빠지는 등 보다 형이상학적인 것에 매달려야 하는데 모두들 아등바등 학점과 취업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한심스럽다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처한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태도지만 이 역시 그의 멋이기도 했다.

그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를 좋아했으며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그 화농으로 숨진 것을 가장 시인적인 죽음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평생 40권의 시집과 7권의 시론집을 냈던 그는 기도폐색증으로 지난해 11월 29일 영면했다. 예술원 회원인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의 죽음을 릴케의 사망과 비교하면서 세상에 귀양 왔던 신선이 천상으로 돌아갔다는 추모사를 썼다.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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