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의 그늘]<下>멀기만 한 재활의 꿈

  • 입력 2005년 11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40대 정신질환자인 A 씨(왼쪽)와 어머니 P 씨가 서울 강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단둘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모자가 겪는 고통은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이훈구 기자
40대 정신질환자인 A 씨(왼쪽)와 어머니 P 씨가 서울 강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단둘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모자가 겪는 고통은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이훈구 기자
《공기업을 다닌 남편 덕에 지금껏 한번도 생계 걱정을 해보지 않았던 복모(51) 씨는 7년째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딸(22)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얼마 전부터 한 사회복지관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다. 딸의 정신질환을 비관해 술을 자주 마시던 남편마저 과대망상증세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자 복 씨로서는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정신질환을 겪는 두 사람에게 드는 약값만 한 달에 30여만 원. 둘 중 하나라도 증세가 심해져 병원에 입원하면 입원비만 한 달에 200만∼300만 원이 든다. 결국 복 씨 가족은 어렵게 마련한 집마저 팔았고 이후 전세금을 줄여 가며 4년 동안 4번이나 이사를 다녀야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6월 현재 정신질환자는 모두 5만9000여 명. 그러나 이는 장애인으로 등록된 공식 통계일 뿐 실제로는 690만여 명에 이른다는 것이 복지부의 추산이다.

전체 인구의 14%가 정신질환자인 셈이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 부족으로 정신질환자의 가족은 치료비 등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편견의 이중고로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빈곤의 악순환, 추락하는 정신질환자 가족=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와 한국릴리가 올해 초 이화여대 김수지(金秀智·간호학) 교수에게 의뢰해 정신질환자 가족 513명, 일반인 425명 등 총 93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질환자 가족의 54.6%가 월소득 100만 원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저소득 정신질환자 가족을 압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엄청난 치료비와 약값. 한 달에 드는 약값도 보통 15만∼20만 원이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생활보호대상자에 한해 정신장애 1, 2급 6만 원, 3급 2만 원 지급과 무료 약 제공이 전부다.

20여 년 동안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오빠와 함께 살고 있는 김모(38)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오빠의 치료비는 물론 집안 생활비까지 벌어야 했지만 오빠의 상태가 악화될 때마다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고 말했다.

▽견디기 힘든 사회적 편견과 재활을 위하여=정신질환자 가족들은 “경제적 고통보다는 사회적 편견이 더 견디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23년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고일곤(高一坤·41) 씨의 어머니 신순금(申順金·67) 씨는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기피 현상 때문에 가족마저 생이별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신질환자인 큰아들 밑으로 3남매가 있지만 서로 왕래하지 않은 지 오래”라며 “정신질환자 가족이라는 것이 주변에 알려지면 이웃은 물론 직장에서도 곱게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 교수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앓았던 사람들의 가족이 좀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한다’는 문항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한 일반인은 모두 38.77%에 달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열린 공간 재활치료로 바꿔야

‘수용에서 재활로.’

정신질환자들은 병·의원이나 요양시설에서 수용 상태의 치료가 아니라 사회복귀시설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4년 정신보건시설 입원 및 입소 현황’에 따르면 사회복귀시설에서 직업훈련이나 생활 적응훈련 등의 재활치료를 받는 정신질환자는 전체 시설 입원 입소자의 0.7%에 불과하다.

나머지 정신질환자들은 모두 정신병원이나 요양시설, 부랑인시설 등에서 약물치료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톨릭대 이용표(李容標·사회복지학) 교수는 “정신질환자들이 일반인과 격리된 곳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개방된 곳에서 함께 어울리며 재활치료를 받는 게 효과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는 1978년 정신보건법을 개정해 정신질환자의 정신병원 입원을 금지한 뒤 정신병원을 단계적으로 축소했다. 재활치료를 위한 사회복귀시설을 늘리기 위해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용인정신병원 정신과 진범수(陳汎秀) 전문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주민들이 재활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편견도 수용 위주의 병원 치료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