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新귀족들, 그들만의 삶 즐긴다

  • 입력 2005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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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프랑스 파리의 한 특급 호텔에서 상류층 인사들만 참석하는 무도회가 열렸다. 주인공은 10개국에서 온 16~19세 여성 18명. 이들을 프랑스 사교계에 정식으로 데뷔시키는 행사였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조카, 카를로스 곤 르노 사장의 딸, 영화배우 스티브 매퀸의 손녀 등이 이날 무도회를 통해 프랑스 사교계에 데뷔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당장 일자리가 없어 자동차를 불태워 가면서까지 불만을 표출하는 젊은이들에게는 꿈조차 꾸기 힘든 ‘그들만의 삶’이다.

주간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최근호에서 프랑스의 ‘신(新)귀족’을 집중 해부했다. 잡지는 프랑스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CAC40지수에 속한 기업들의 소유주 및 최고경영자(CEO)를 신귀족으로 분류했다.

▽신귀족의 등장=신귀족이 탄생한 것은 영미식 자본주의가 프랑스에서 뿌리를 내리면서부터다. ‘능력에 따른 차별’이라는 가치가 이들 사회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귀족적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론 탓에 프랑스 CEO들의 보수는 미국 영국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었다.

잡지는 “당시 수천만 프랑 하던 월급이 이제는 단위만 유로화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자면 200만 프랑(약 5억 원)이던 연봉이 200만 유로(약 25억 원)가 된 것.

1998년 이후 이들의 보수는 215%가량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일반인의 임금 인상률은 25%. 지난해 CAC40의 CEO들은 하루 평균 1만5000유로(약 2000만 원)를 번 것으로 추산됐다.

▽그들만의 생각=이들은 프랑스식 기준은 뒷전으로 한 채 철저하게 해외를 벤치마킹한다. 미국 CEO들의 보수와 자신들의 보수를 비교하고, 중국 근로자들의 월급을 기준으로 직원들의 월급을 결정하는 것.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세계 시민’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잡지는 설명했다. 얼마 전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가 기업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발언을 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대부분 “프랑스 회사란 개념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 이들은 더 큰 이익 창출을 위해 중국과 동유럽으로 속속 공장을 이전했다.

이웃 국가의 귀족 집안과 사돈을 맺는 게 다반사였던 옛날 귀족들처럼 이들에게도 국경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한 사회학자는 “신귀족에게는 그들의 사회가 곧 조국”이라고 규정했다. 비판도 만만치 않다.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는 최근 펴낸 책에서 “신귀족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끊임없는 희생을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그들만의 삶=옵세르바퇴르는 “신귀족 집단은 프랑스인끼리 모여도 영어로 얘기한다”고 꼬집었다. 신귀족 집단의 관심사는 프랑스가 아니라 세계다.

잡지는 “월요일 오전에 베를린에서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뉴욕의 미술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하고, 다음 날은 베이징으로 출장을 가는 게 이들의 삶”이라고 소개했다.

이를 위해 40개 기업은 모두 CEO의 전용 비행기를 갖고 있다고 잡지는 밝혔다. 이들은 한 벌에 5000유로(약 600만 원)가 넘는 에르메스, 크리스찬 디올 같은 명품을 두르고 다니며 대부분 요트를 취미로 삼고 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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