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워치]참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의 가벼움

  • 입력 2005년 11월 2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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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면 12월이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 한 달은 전 세계적으로 그야말로 ‘쇼핑 광풍’이 부는 계절이다. 대규모 세일을 앞세운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네온사인이 온통 도시를 뒤덮는다. 이미 추수감사절 휴가를 맞은 미국에선 쇼핑객들의 질주로 부상하는 사고까지 벌어졌다.

‘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에코(73·사진)가 27일 선데이 텔레그래프에 ‘신은 어떤 이들에겐 충분히 크지 않다(God isn't big enough for some people)’라는 글을 실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세속화될 대로 세속화된 오늘의 크리스마스 문화 코드를 분석한 기고문이다.

8개 언어를 구사하는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이기도 한 그의 관심사는 컴퓨터 담론부터 영화 ‘007’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전문분야는 단연 밀교(密敎·occult) 집단이다.

그는 우선 성 니콜라스가 산타클로스의 모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성 니콜라스는 창녀로 팔려 갈 운명에 처한 세 자매를 구한 성자. 그러나 오늘날 산타클로스는 어린이들에게 ‘선물’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에코는 ‘종교적 동물’인 인간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시작한다. 종교의 역할은 인간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정의했다. 돈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지만 죽음만은 예외다.

에코는 “인간이 신을 안 믿게 되면 모든 걸 믿게 된다”는 영국 작가 G K 체스터턴의 말을 인용하면서 현대인은 ‘터무니없는 믿음’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을 이어 나갔다.

“신의 죽음이 많은 새로운 우상을 낳았다. 시체에 번식하는 박테리아처럼 각종 우상숭배로부터 ‘다빈치 코드’라는 미신에 이르기까지….” 그는 특히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 대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는 게 놀라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에코에겐 이 모든 것이 ‘밀교’다. 그는 이런 현대 신비주의에 대해 “기성종교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신에게 더 많은 걸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진짜 비밀은 얘기하길 거부하면서 모든 걸 설명해 줄 비밀스러운 뭔가가 있다고만 말하는 신비주의는 파시즘이나 나치즘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로 자라났지만 결국 종교를 버린 계몽주의자 에코. 그는 “올해 12월 나는 어렸을 때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손자와 함께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말구유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을 버린 그가 이렇게 성탄을 축하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제임스 조이스가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던진 질문을 빌린다. “논리적이고 이치에 닿는 어리석음(logical and coherent absurdity)은 놔두고 비논리적이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어리석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자유인가?”

에코는 종교적 크리스마스는 최소한 ‘이치에 닿는 어리석음’일 수 있지만 상업적 크리스마스는 그것조차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결국 크리스마스 상업주의는 신비주의 밀교문화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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