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의 그늘]<上>탈출구 없는 삶

  • 입력 2005년 11월 2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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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살에 갇힌 인생수도권에 있는 미인가 정신질환 요양시설의 내부 모습. 입구와 창문들이 철창으로 막힌 병실에 정신질환자를 수용하고 있다. 이들은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보호자가 보내 주는 약품에 의존한다. 문병기 기자
창살에 갇힌 인생
수도권에 있는 미인가 정신질환 요양시설의 내부 모습. 입구와 창문들이 철창으로 막힌 병실에 정신질환자를 수용하고 있다. 이들은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보호자가 보내 주는 약품에 의존한다. 문병기 기자
《급속한 사회 발전에 따라 정신질환자가 부쩍 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의료서비스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심지어 사회적 무관심과 열악한 시설 속에 방치돼 사망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인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되돌아보며 해법을 찾는 시리즈를 2회에 걸쳐 싣는다.》

정신요양시설에서 사망한 환자의 평균 수명이 일반인에 비해 20세 이상 낮고, 인구 1만 명당 사망비율은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3년 동안 정신질환자 약 400명이 광역자치단체가 관리 운영하는 시설에서 숨진 것으로 밝혀져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 같은 사실은 본보가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14개 지자체에서 입수한 ‘2002∼2004년 정신요양시설의 사망자 현황’ 분석 결과 드러났다.

▽허술한 관리와 빈약한 시설=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는 2000년 11만1812명에서 올해 6월 19만1845명으로 5년 동안 70% 이상 늘었다.

정신질환자의 병상 수는 국립과 사립을 합쳐 6월 현재 6만8321개로 5년 전에 비해 17.3% 증가했다.

병상 수 증가에 따라 시설에 수용돼 있다가 숨진 환자가 늘고 있다.

14개 광역자치단체가 관리 운영 중인 정신질환요양시설은 56곳. 2002년부터 3년간 이곳에서 숨진 환자는 지난해 145명을 포함해 모두 391명이다.

원인별로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75.4%를 차지했고 사고사는 2.6%에 불과했다.

사망자의 평균연령은 54.3세로 일반 국민의 평균수명(77세)에 비해 22.7세 낮았다. 이 중 30대 이하는 11.3%였다.

또 지난해 인구 1만 명당 평균 사망자는 107.5명으로 일반인 사망자 50.7명보다 2배 이상 높았다.

한양대 남정현(南正鉉·신경정신과) 교수는 “평소 합병증 등을 앓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수명이 단축되고, 사망자가 늘어났다”며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를 전반적으로 재정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베일에 가린 죽음=정신질환요양시설에서 숨진 환자의 사망 원인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자료를 보면 이들의 사망 원인은 ‘정신분열과 영양실조’ ‘치매’ 등 다소 모호하게 기록돼 있는 경우가 많다.

사망 환자의 20% 이상은 원인이 아예 기재돼 있지 않거나 ‘원인 미상’으로 표현된 것으로 본보 취재 결과 나타났다.

입·퇴원 절차도 개선이 시급한 부분으로 지적된다. 올해 7월 부산에서는 술에 취해 쓰러진 40대 남자가 경찰에 의해 행려병자로 취급돼 정신병원에 4년 동안 수용된 사실이 드러나는 등 보호자의 동의 없이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킨 경우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곳에서 환자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태가 호전됐는데도 인도할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퇴원시키지 않아 26년 이상 수용된 환자가 6명이나 됐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미인가시설, 위생-화재-인권침해 무방비▼

수도권의 한 미인가 정신질환요양시설. 2m 높이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이 시설 중 환자 15명이 머물고 있는 방은 철창문으로 가로막혀 있고 창문 역시 쇠창살로 2중, 3중으로 덮여 있었다.

외부인의 출입이 차단된 이 시설의 정신질환자들이 ‘세상 구경’을 할 수 있는 기회는 하루 세 번의 예배 시간뿐. 이 요양시설 입원 환자 대부분은 고혈압과 당뇨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의무실이 없어 가족이 보내 주는 약품에 의존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를 수용하는 미인가 시설은 그동안 시설 미흡과 함께 수많은 인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시설의 한 직원은 “공식 사회복지시설로 전환하기 위해 올해 7월 조건부 인가 신청을 하고 시청으로부터 정기 점검을 받고 있지만 위생과 화재 예방, 시설 노후 등에 대한 지적을 받았을 뿐 인권 침해에 대한 지적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2년 6월 ‘미신고 시설 종합관리대책’을 마련하고 올해 7월까지 ‘조건부 신고’ 제도를 통해 시설과 인력 등을 법정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강제 폐쇄하고, 법정 기준을 채우면 신고 시설로 전환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들 시설 생활자 중 무료 생활 시설로 옮길 수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절반 정도에 그쳐 정책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게 됐다. 강제 폐쇄를 했을 때 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은 오갈 데가 없어지게 되는 데다 오히려 미인가 시설의 음성적 운영만 부추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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