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리가 무슨 권한으로 불구속 가능 운운하는가”

  • 입력 2005년 11월 2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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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국무총리(왼쪽)가 지난해 7월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이 총리는 13일에도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가 임동원,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의 불구속 수사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해찬 국무총리(왼쪽)가 지난해 7월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이 총리는 13일에도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가 임동원,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의 불구속 수사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설마…. 구속 불가피성에 대한 양해를 구했겠지.”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검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전날인 13일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해 사실상 두 국정원장이 불구속 수사를 받을 수 있는 ‘묘수’를 보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검찰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차츰 그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당시 정황과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두 전직 국정원장에 대해 ‘과거 잘못을 시인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면 불구속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두 전직 원장이 혐의 사실을 시인하지 않고 “도청은 전혀 알지 못했다”며 버텨 검찰은 막판에 구속영장 청구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청 수사팀 검사들도 “두 전직 국정원장이 유감 표명이나 잘못을 뉘우치는 발언을 한마디라도 한다면 불구속 수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리와 DJ 측의 ‘협상 시도’ 소식에 도청수사팀의 한 검사는 “한마디로 황당하고 너무나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이 검사는 “정부를 대표하는 국무총리가 두 전직 국정원장의 ‘구속 불가피’ 사유를 자세히 알고 황급히 DJ를 찾아 ‘두 전직 국정원장에게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보이도록 하면 불구속 수사가 가능하니 두 전직 국정원장에게 그런 뜻을 내려 달라’고 했다는 얘기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상당수 검사는 어떻게 구체적인 수사 상황이 국무총리에게까지 보고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한 중견 검사는 “아무리 ‘실세 총리’라지만 어떻게 총리가 수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이래서야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검사는 “국무총리가 전직 대통령에게 ‘불구속 조건’을 운운한 것은 총리가 권한 밖의 일을 행사한 것”이라며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현 정권의 ‘이중 플레이’를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니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도 피의자가 수사에 협조하거나 유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면 선처를 해 주며 사실상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러나 이 총리의 시도는 수사에 관여할 아무런 권한이 없는 정치인이 ‘폴리티컬 바게닝(political bargaining·정치적 협상)’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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