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 386’ 그룹이 만든 계간지 ‘시대정신’ 30호

  • 입력 2005년 11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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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추세에 대한 과도한 거부감, 폐쇄적 울타리에 갇혀 있는 편협한 민족주의, 모든 것을 평등의 잣대로만 보려는 획일적 평등주의….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일부 386세대가 20년 전의 사고에 멈춰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386세대 중에 적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면서 이를 마치 사회 정의를 위한 것인 양 합리화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사고를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1980년대 ‘강철서신’의 저자이자 주사파의 대부로 활약하다 1990년대 말 사상 전향을 선언한 김영환 씨 등 ‘전향 386’ 그룹이 동료 세대에게 따끔한 충고를 던졌다.

이 같은 발언의 무대는 최근 발간된 ‘시대정신’ 2005년 가을·겨울호. ‘시대정신’은 김 씨를 비롯해 한기홍 홍진표 곽대중 최홍재 이광백 씨 등 386세대 핵심 운동권 출신이면서 급진사상과 결별한 이들이 1998년부터 발간해 오고 있는 잡지. 이번에 30호를 냈다.

이들이 ‘시대정신’을 창간한 것은 1980년대식 이념으로는 21세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일제 지배와 민족 해방, 남북 분단과 전쟁을 거쳐 한편에서는 놀라운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향한 험난한 노력이 있었고 또 한편에서는 사회주의 아래서 수백만이 굶어죽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와 복잡다단함 속에서 사람들은 매우 혼란스럽다. 특히 과거의 진보이념에 기초해 1970, 8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와 인간 해방을 위해 자신을 헌신했던 사람들은 더욱 그러하다.”(1998년 창간사 중에서)

이들이 세계화, 한국 사회의 자유주의적 개혁, 북한 민주화를 포함한 세계적 차원의 민주화 등을 새로운 시대이념으로 제시하고 나서자 운동권 내에선 격론이 일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정책위원을 지낸 이광백 씨는 “당시 ‘배신자’라는 목소리도 들렸다”면서 “하지만 새로운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진지한 토론에 나서는 ‘옛 동지’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토론이 뜨거워지면서 정기 구독자가 3000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른바 진보정권하에서 사회 전체가 ‘이념전쟁’을 치르면서 권력 주변으로 진입한 386세대 가운데는 아예 등을 돌려버리며 절연한 사람도 많았다. 그 대신 전문직군을 포함해 각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내던 또래 세대들이 성원을 보내 줬고 최근엔 뉴라이트 운동 참여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내고 있다. 편집위원 가운데 홍진표, 최홍재 씨는 뉴라이트 운동을 이끄는 ‘자유주의연대’에 참여하고 있다.

창간 후 어느덧 7년이나 지났지만 이들의 ‘시대정신’과 권력 주변 진보세력이 내세우는 시대정신은 여전히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번 30호 특집 ‘민족주의와 평균주의를 넘어 세계로’에서 이들은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편협하고 배타적인 사고방식을 지적했다.

이들은 친일파 척결 논란이나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 등을 그 예로 들면서 “상식을 넘어선 배타적인 태도는 두고두고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역사를 역사 그 자체로 보고 민족과 민족주의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현실과 유리된 민족주의로는 21세기의 험난한 파고를 극복해 나갈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이념을 한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기 위해 내년부터는 386 운동권 출신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와 단체로 잡지의 문호를 개방할 계획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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