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뛰는 ‘황우석 사단’…“아버지가 자리비웠다고 놀수없죠”

  • 입력 2005년 11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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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가 자리를 비운 서울대 수의대 연구동에서 25일 이병천 교수를 비롯한 35명의 연구진이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심란한 마음에 표정들은 밝지 않았지만 연구활동을 재개하기로 했다. 사진은 이 교수의 강연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황우석 교수가 자리를 비운 서울대 수의대 연구동에서 25일 이병천 교수를 비롯한 35명의 연구진이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심란한 마음에 표정들은 밝지 않았지만 연구활동을 재개하기로 했다. 사진은 이 교수의 강연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내일 오전 7시 랩미팅(전체 회의) 다시 시작합시다. 아버지가 자리 비우셨다고 자식들이 놀고 있으면 안 되죠.” 24일 오후 6시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李柄千) 교수 연구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같은 과 강성근(姜成根) 교수에게 이 교수가 말을 던졌다. 이들은 ‘좌 병천, 우 성근’이라 불릴 정도로 황우석(黃禹錫) 서울대 석좌교수의 연구를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핵심 멤버들. 이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황 교수를 언급할 때 ‘아버지’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황 교수는 이날 ‘연구원 난자 사용’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어디론가 홀연히 떠났다. 연구원들은 빈자리가 너무 커 수의대 건물이 텅 빈 느낌이 난다고도 했다.

“(황 교수가)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받은 충격이 무척 컸을 겁니다. 당분간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휴식을 취하실 거예요.”(이 교수)

황 교수팀의 연구실 출근 시간은 오전 6시.

불교단체 지원 모임
불교인권위원회와 대한불교청년회 등 불교 관련 12개 단체 관계자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내 한국불교역사박물관에서 황우석 교수를 돕겠다고 밝히면서 세계줄기세포허브 소장 직 복귀를 호소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오전 6시 반 회의를 시작으로 밤 12시를 넘기면서까지 실험을 강행한다. 휴일이 거의 없다 보니 연구팀의 1주일은 ‘월화수목금금금’이다.

황 교수팀은 1주일에 한 번씩 전체 연구원들이 모여 랩미팅을 갖는다. 황 교수는 이 모임에서 연구의 전체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 연일 고된 생활을 반복하는 연구원들을 다독거렸다고 한다.

2주 전 제럴드 섀튼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가 ‘결별 선언’을 한 이후 이렇게 중요한 랩미팅이 열리지 못했다. 10여 년 동안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던 모임을 두 번이나 걸렀다.

얼굴이 까칠해진 이 교수는 “윤리 논란이 계속된 3개월 동안 몸무게가 8kg이나 빠졌다”고 씁쓸히 말했다.

황 교수가 언제 연구실에 복귀할지, 그의 소장 직 사퇴로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는 세계줄기세포허브는 어떻게 될지 이 교수의 걱정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연구원들이 동요하지 않고 연구에 전념하도록 채찍질하는 게 ‘맏형’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25일 오전 7시. 35명의 연구원이 다시 회의실에 모였다. 3주 만에 랩미팅이 다시 열린 것이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울먹이는 연구원들도 있었어요. 전날의 상처가 너무 커서인지 서로 얼굴을 마주치려 하지 않더군요.”

이 교수는 “이럴 때일수록 연구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마냥 의기소침하면 황 교수님 마음도 편치 않을 것”이라며 연구원들을 독려했다.

황 교수도 이날 오후 이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연구원들은 괜찮은가. 연구에 차질이 없도록 내 대신 잘 다독여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간단한 실험부터 손을 대며 그동안 미뤄놨던 ‘산더미 같은’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겠다고 했다.

“올해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 정도의 ‘큰 건’이 지금 두 개나 있는데 국제저널에 제출도 못했어요. 외국에서 먼저 발표할까봐 걱정이에요.”

그래도 희망은 있다. 줄기세포 연구 협력을 위해 미국에 간 안규리(安圭里) 서울대 의대 교수가 23일 이 교수에게 “외국의 줄기세포 연구기관들이 무척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의 국제전화를 해 왔기 때문.

“어제까지의 일은 훌훌 털어버리고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연구에 매진하겠습니다.” 이 교수의 다짐이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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