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 티끌만 한 모터 만드는 게 과학이다

  • 입력 2005년 11월 2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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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물기둥이 늘어났다(위) 줄어드는 모습. 제원호 교수팀이 원자현미경의 탐침으로 물질 표면을 연구하다가 그 사이에서 두께 2.6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높이 5, 6nm인 물기둥을 만들었다. 물분자가 1000여 개 모여 있다. 사진제공서울대
미세 물기둥이 늘어났다(위) 줄어드는 모습. 제원호 교수팀이 원자현미경의 탐침으로 물질 표면을 연구하다가 그 사이에서 두께 2.6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높이 5, 6nm인 물기둥을 만들었다. 물분자가 1000여 개 모여 있다. 사진제공서울대
○ 제원호 교수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물기둥 제작

지구 표면적의 5분의 4를 덮고 있으며 인체의 약 70%를 차지하는 물. 흔히 잘 알 것이라 생각하지만 과학자조차 정체를 잘 모른다. 물은 일반적인 액체와 40여 가지나 다른 특성을 가진다.

20세기 후반부터 점차 물의 신비가 벗겨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물의 구조를 새롭게 밝힌 연구성과를 ‘2004년 10대 과학업적’에 꼽기도 했다. 최근에는 서울대 물리학부 제원호 교수팀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기둥을 만들었다.

○ 뜨거운 물이 찬물보다 빨리 얼어

바다는 다른 액체가 아닌 물로 구성돼 있는 덕분에 해수면이 40m 정도 더 낮아졌다. 이에 따라 사람이 살 수 있는 육지의 면적은 5%가량 더 늘어났다. 압력을 가했을 때 물은 보통 액체보다 부피가 더 많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겨울철 호수가 위에서부터 얼어 그 아래 물고기가 살 수 있는 것도 물의 특별한 성질 때문이다. 물은 섭씨 4도에서 밀도가 가장 커 0도의 얼음이 그 위에 뜰 수 있다.

추운 겨울날 물을 밖에 뿌릴 때 찬물과 뜨거운 물 중 어떤 것이 빨리 얼까. 찬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답은 뜨거운 물이다.

제 교수는 “찬물에는 뜨거운 물보다 정이십면체 구조가 많다”며 “이 구조는 보통 얼음을 이루는 육각형 구조로 바뀌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래서 찬물은 0도 이하로 금방 떨어져도 쉽게 얼지 못하는 ‘과냉각 상태’로 오래 유지된다.

제원호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공기 중에서 원자 하나하나를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원자현미경을 개발했다. 사진 앞쪽은 원자현미경의 일부. 이 원자현미경을 이용해 탐침을 0.1nm로 미세하게 움직여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기둥을 만들 수 있었다. 사진 제공 서울대

○ 물기둥이 고무줄처럼 줄었다가 늘어나

미국 캘리포니아 요세미티국립공원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가 산다. 키가 112m나 되는 이 나무는 펌프도 없이 어떻게 땅속 뿌리에서 꼭대기로 물을 전달할까. 나무 조직 속의 수많은 미세 물기둥이 모세관 역할을 하는 덕분이다.

바닷가에서 거대한 모래성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미세 물기둥이 모래 알갱이를 서로 연결시켜 주기 때문이다. 딱정벌레가 잎 표면에 붙어 있을 수 있는 이유도 미세 물기둥 덕분이다. 다리에 물기둥을 만들어 잎 표면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제 교수팀은 같은 학부의 임지순 교수팀과 함께 두께 2.6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높이 5, 6nm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기둥을 만드는 데 성공해 물리학 전문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 최신호에 발표했다.

창의연구사업단인 ‘근접장 이용 극한 광기술 연구단’의 지원을 받은 이 연구성과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미국 물리학회의 ‘피지컬 리뷰 포커스’에도 자세히 소개됐다. 지금까지 금속으로만 만들 수 있었던 미세 기둥을 액체로 처음 만든 것.

○ 세포막에서 이온이 드나드는 과정연구 모델

연구팀은 공기 중에서 원자 하나하나를 연구할 수 있는 원자현미경을 개발하다가 현미경 끝의 탐침과 표면 사이에서 물분자 1000개 정도로 구성된 미세 물기둥을 만들 수 있었다.

제 교수는 “세계 최초로 물기둥의 탄성도 쟀다”고 말했다. 탐침을 미세하게 진동시키며 이 물기둥을 늘렸다 줄였다 함으로써 고무줄보다 20분의 1가량 작은 탄성이 있음을 알아낸 것.

미국 보스턴대 물리학과 유진 스탠리 교수는 “이런 물기둥은 세포막에서 이온이 들락날락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며 “제 교수팀이 만든 인공적 물기둥은 세포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연구하는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고 업적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제 교수는 “이 물기둥으로 실리콘 기판 위에 미세한 패턴을 그리면 물이 있는 부분이 산화된다”며 “반도체 메모리뿐 아니라 머리카락 굵기보다 작은 기어나 모터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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