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마가타의 한국 며느리들

  • 입력 2005년 11월 24일 16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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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북부 산악지역의 야마가타(山形) 현. 현 전체의 인구가 120만 명에 불과한 오지이지만 10여개의 김치 브랜드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김치 격전지'다. 결혼 적령기를 놓친 일본의 농촌 총각에게 시집온 한국 여성들이 부업삼아 김치를 내다 팔면서 생긴 현상이다.

민단 야마가타 현 본부에 따르면 일본 남성과 결혼해 이곳에 정착한 한국 여성은 1700여 명. 1980년대 후반 '한국 며느리'들이 첫 선을 보인 이후 해마다 늘어 지금도 연간 100명 이상이 야마가타의 농촌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하고 있다.

좋은 상대를 만나 단란하게 가정을 꾸리고 사는 모범 사례가 적지 않지만 30% 가량은 적응에 실패해 한국으로 되돌아가거나 도쿄(東京) 등 대도시의 유흥가를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김치공장에서 발휘되는 한국 여성의 힘 = 현지 김치 제조업체 중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우메짱 김치'의 김매영(金梅永·45) 사장도 92년에 시집온 한국 며느리 1세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먼저 정착한 선배의 소개로 건설회사에 다니는 5살 연상의 지금 남편과 맞선을 본 뒤 일본행을 택했다. 시부모를 모시며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 8년 전 동네 사람들에게 김치 강습을 해준 것이 계기가 돼 김치 사업가로 나섰다.

억척스럽게 판로를 확보하고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김치를 개발한 덕택에 지금은 도쿄의 유명 슈퍼체인에 납품할 정도로 회사 규모가 커졌다. 한해 매출이 6000만 엔(약 6억 원)인 그의 김치공장에서는 비슷한 처지의 한국, 중국, 조선족 여성 14명이 일하고 있다.

한국 여성들이 경쟁적으로 김치 판매에 나서면서 야마가타 현 일대에선 한류 열풍이 불기 훨씬 전부터 김치가 현지 주민들의 식탁에 올랐고 늦가을엔 '김장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김 사장은 "일부 한국 여성들은 일본이면 어느 곳이든 부유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갖고 오는데 그러면 실패하기 십상"이라며 "우선 결혼 상대자를 잘 골라야 하고, 일본 문화와 생활 습관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하고 와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고 충고했다.

▽브로커 농간, 이혼, 잠적 등 부작용도 심각 = 한국 신부감의 야마가타 진출은 80년대 후반 이곳의 한 부락이 충북의 한 지역과 교류 행사를 열어 국제결혼을 성사시킨 게 계기가 됐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농촌 생활을 기피해 40세가 넘도록 배우자를 찾지 못하는 남성이 많다.

97년 외환위기 직후엔 한국에서 이혼한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재가하는 사례가 늘었고, 최근엔 조선족 여성이 한국에서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한국 신부'로 탈바꿈해 일본에 오기도 한다.

주제규(朱帝圭) 민단 사무국장은 "초기엔 먼저 시집온 한국 여성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소개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문 브로커가 나서면서 결혼 건수가 크게 늘었다"며 "수수료 수입만을 노리는 브로커의 농간으로 정착 성공률도 점점 떨어지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한일 국제결혼과 관련한 물의가 속출하자 브로커들은 이와테(岩手), 아키다(秋田) 등 인근 지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일본 남성도 처음엔 외모가 비슷한 한국 여성을 신부감으로 선호했지만 요즘은 중국이나 필리핀 여성의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다.

14년 전 전업농인 남편과 결혼해 모범적인 가정을 이룬 니토 하루코(二戶春子 일본명· 55)씨는 "일본 농촌에서 살아보니 한국도 동남아시아 신부들을 괄시하지 말고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걸 절감한다"고 말했다.

야마가타=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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